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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고령화는 평화를 가져오는가? / 전상진

등록 2019-01-13 16:56수정 2019-01-13 19:41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인구 고령화가 가져올 재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온 세상을 삼켰다. 목소리는 재앙을 피하는 유일한 해법이 인구를 젊게 만드는 것이라 외쳤다. 물론 색다른 의견도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인구가 젊으면 폭력이 만연하고, 인구가 늙으면 평화로워진다고 주장한다.

청년 과잉(youth bulge)과 전쟁 지수(war index)라는 용어가 색다른 주장의 핵심이다. 젊은 남성들이 늙은 남성보다 많은 상태, 즉 은퇴를 앞둔 장년 남성(55~59살)보다 ‘삶의 투쟁’을 목전에 둔 젊은 사내(15~19살)가 많아진 상태가 청년 과잉이다. 청년과 장년 남성의 비를 전쟁 지수라 한다. 지수가 높으면, 곧 청년이 장년보다 많으면 전쟁과 같은 폭력의 위험성이 커진다.

세가지 점이 마음에 걸린다. 국가들이 늙어간다고 걱정이 태산인데, 장년보다 청년이 많다는 게 도대체 왜 문제인가? 남성만 주목하다니, 그럼 여성은 뭐란 말인가? 전쟁 지수가 높은 곳은 중동, 아프리카, 서남아시아인데, 혹시 그들을 낮잡는 게 아닌가? 허리를 곧추세우고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은퇴를 앞둔 남성들이 지위와 자원을 틀어쥐고 있을 때, 그것을 요구하는 젊은 남성의 수가 많아지면 사회가 불안전해진다. 그들은 젊은 여성과 달리 수단과 방법을 덜 가리며(폭력도 불사), 원하는 지위와 자원을 얻기 위해 큰 희생(목숨도 바치겠다)도 각오한다.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국제 테러리즘, 아랍의 봄과 같은 반정부 시위, 유럽과 미국을 향한 난민과 이주민의 물결이 그 결과다. 테러리즘과 격렬한 시위와 국제 이동의 수원지는 인구가 젊고 증가하는, 곧 전쟁 지수가 높은 가난한 나라다. 테러리스트, 극렬 시위자, 난민과 이주민의 다수가 가난한 나라의 젊은 남성들이다.

반면에 전쟁 지수가 낮으면, 곧 젊은 남성에 비해 장년 남성들이 많으면 세상이 평화롭다. 목적이 뚜렷하고 폭력적이며 각오도 비장한 청년 남성과 달리 노회한 장년 남성은 목적에 유연하고 수단 선택에 깐깐하며 큰 희생을 저어한다. 그 덕인지 저출산과 고령화를 걱정하는 선진국들은 고출산과 인구 증가에 시달리는 후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안전하다. 다만 부자 나라에 쏟아져 들어온 가난한 나라의 젊은 남성들, 곧 이주민과 난민, 그에 암약하는 테러리스트와 폭력 분자는 사회의 불안 요소가 된다.

결국 색다른 주장의 요지는 이거다. 청년 남성의 과잉이 전쟁 지수를 높여 나라를 불안하게 만든다. 상식과 충돌한다. 상식은 우리에게 젊은이들이 증가하는 상태가 좋은 것 따라서 ‘인구 보너스’, 그들이 감소하는 상태는 나쁜 것 그러므로 ‘인구 오너스’라 하지 않았던가.

언뜻 대립하는 두 입장은 조화를 이룬다. 양자 모두 좋은 인구와 나쁜 인구를 구별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좋은 인구는 자꾸 줄어든다. 그래서 문제다. 후진국의 나쁜 인구는 끊임없이 늘어난다. 그래서 문제다. 최근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상당한 양의 인구가 유입되었다. 그러면 선진국의 인구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닐까? 멍청한 의견이다. 인구는 나쁜 것과 좋은 것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선진국으로 ‘수출’된 후진국의 젊은 인구는 나쁜 인구다. 그러한 인구의 이동은 폭력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세계화할 뿐이다. 이제 세계가 몽땅 불안전해졌다.

좋거나 나쁜 인구를 구별하는 관점은 이 땅에서도 활약했다. 50년 전의 가족계획사업은 이미 출산을 저어하는 도시 중산층이 아니라 아이를 잔뜩 생산하는 농촌의 농민을 겨누었다. 그렇다. 사람이라고 모두 같은 인구가 아니다. 인구는 구별된다! 그런데 누가 인구의 좋고 나쁨을 구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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