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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아무도 없었다 / 홍은전

등록 2019-01-14 18:30수정 2019-01-15 13:51

홍은전
작가·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활동가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공동정범>을 보며 깜짝 놀랐던 사실은, 참사의 희생자와 구속자 중 상당수 사람들이 용산 재개발 지역의 철거민이 아니라 이들의 싸움에 연대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온 철거민들이었다는 것이다. 3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했던 생존자 천주석씨를 따라간 카메라가 그가 살고 있는 서울 상도동 재개발 지역을 비추었을 때 나는 조금 멍해졌다. 거대한 쓰레기장처럼 폐허가 된 동네는 또 다른 참사의 현장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아마도 나는 ‘연대’라는 것을 ‘덜 절박한 사람이 더욱 절박한 사람에게 하는 일’쯤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에서 용산참사 생존자 김창수씨가 말했다. “내 편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성남 단대동의 철거민이었다. 떠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이주하려 했지만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집주인은 전세금을 내주지 않았고, 그사이 주변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떠나지 ‘못한’ 것이었다. 막무가내로 강행하는 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철거민들이 시위를 하던 날이었다. 수백명의 경찰이 물샐틈없이 시위대를 에워싸더니 잠시 후 경찰이 열어준 틈 사이로 용역들이 줄지어 들어와 이중으로 시위대를 포위하는 것이었다. 창수씨는 ‘나라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그 배신감과 억울함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편이 없는 사람들은 서로의 편이 되어주었다. 언젠가 용인의 강제철거 소식을 듣고 달려갔던 날, 창수씨는 중년의 남자가 자신의 집을 부수는 굴착기에 맞서 항아리를 치켜들고 홀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았다. 남자의 아내는 용역들에게 사지가 붙들린 채 땅바닥에 짓눌려 있었다. 용역깡패에게 점령당한 고립된 땅에서 한낱 짐승처럼 내몰리는 부부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철거민들은 부부를 위해 천막을 지어주었다. 그날 밤 천막 안에서 소주잔을 부딪쳤을 그들을 떠올리며 나는 외롭고도 절박했던 철거민들의 연대를 생각했다. ‘아, 저들은 서로에게 신이었겠구나.’

그리고 2009년 1월20일, 그들은 용산에 있었다. 영화 <공동정범> 속 불타는 망루의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다 몸서리를 친다. 동 트는 새벽, 거대한 마천루의 검은 실루엣 앞에서 활활 타오르는 망루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비현실적인데, 이제 내 눈엔 망루에서 탈출해 난간에 매달린 철거민들이 꼭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처럼 보인다. 그날, 신들이 죽었고 살아남은 신들은 ‘도심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검찰은 그들의 연대를 조롱하듯이 망루에 올랐던 모든 사람들을 공동정범으로 기소했다. 항아리를 던져 저항하던 그 사람 이성수씨는 죽었고, 창수씨는 살아서 구속되었다.

영화는 검찰에 의해 공동정범으로 과잉 기소되면서 시작된 철거민들 사이의 오해와 불신, 갈등을 드러낸다. 외로움이 너무 커서 부서질 것 같은 사람과 부서지지 않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린 사람들은 서로를 원망하고 고립시킨다. 국가폭력이 지나간 자리에서 한때 서로에게 신이 되어주었던 그들의 연대가 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들의 외롭고 눈물겨웠던 연대를 생각할 때만큼이나 가슴 시리다. “그날로 돌아간다면 다시 망루에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어느 생존자의 서러운 말은 마치 “다시 연대할 수 있을까?”처럼 들리고, 그것은 왜인지 김창수씨의 말, “아무도 없었습니다”로 이어져, 나는 왜 이 일에 여전히 관객일 뿐인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곧 용산참사 10주기이다. 내 몫의 싸움을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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