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1904년 2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이 이탈리아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나비부인>의 장소적 배경은 일본 나가사키였고 프리마돈나는 일본 게이샤 역을 맡았으나, 정작 당대의 일본인들은 이 오페라가 전세계인에게 알려지는 걸 반기지 않았다. 그 시대의 구미인들은 유곽과 게이샤를 일본의 표상으로 인식하고 낭만적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일본 지식인 다수는 이들을 국가의 수치로 여겼다. 1903년 9월17일, 지금의 일민미술관 자리에서 요릿집 명월루가 문을 열었다. 후일 <매일신보>는 명월루 개업의 역사적 의의를 이렇게 기록했다. “조선 내에서 요리라 하는 이름을 알지 못할 때, 소위 ‘별별 약주가’ 외에 전골집, 냉면집, 장국밥집, 설렁탕집, 비빔밥집, 강정집, 숙수집 등속만 있어, 먼지가 산처럼 쌓이고 여기저기 깨진 밥상에 전라도 큰 대나무를 마구 잘라낸 긴 젓가락, 씻지 아니하여 아현동 놋그릇 만드는 집에서도 재료로 쓸 수 없는 길고 크고 둥글고 모나고 깊고 얕고 검고 갈색인 천태만상의 밥그릇에, 참고 먹기 어려운 어육과 채소 과일 등을 신사, 노동자, 노소남녀가 한 상에 둘러서서, 또는 무질서하게 섞여 앉아 먹고 마시고 씹고 토하던 시절에, 하나의 신식적, 파천황적, 청결적, 완전적 요리점이 황토현에서 탄생하니, 즉 조선요리점의 비조(鼻祖) 명월관이 이것이라.”(<매일신보> 1912년 12월18일치) 명월루는 곧 명월관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조선의 전통 계승’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파천황적으로 단절된 신식 요리점’을 표방했다. 그리고 이 ‘신식’은 그 시절 다른 문물과 마찬가지로 ‘일본식’을 본뜬 것이었다. 신식 요릿집들에는 1910년대 중반께 요정(料亭)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일본인들은 구미인들이 자국의 유곽과 게이샤를 대하던 시선으로 조선의 요정과 기생을 대했다. 해방 직후 군정청의 미군 장교들도 이국적 정취를 느끼기 위해 요정을 자주 찾았다. 정부 수립 후에는 수많은 국가 중대사가 요정에서 결정되고 엄청난 경제 이권들이 요정에서 거래되어 ‘요정 정치’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 역사가 한국 현대사라면, ‘요정에서’를 추가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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