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중국인들이 주(朱), 홍(紅), 적(赤), 단(丹) 등의 글자들을 만들어 쓴 것으로 보면, 분명 저들 사이의 차이를 인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전(字典)에는 모두 ‘붉다’로 설명된다. 때로 ‘빨갛다’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붉은 피’라고 해야 맞고 ‘빨간 피’라고 하면 틀린다는 법은 없다. 색을 분별해 인지하는 감각과 그를 표현하는 단어들도 문화의 개성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다. 에스키모인들은 흰색을 60여가지로 구분한다는데, 그에 비하면 우리 문화는 색에 무척 둔감한 편이다. 당장 색을 지칭하는 순우리말 단어는 희다, 검다, 붉다, 푸르다, 누르다의 다섯개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하늘도 푸르고 산도 푸르고 강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다. 새파랗다, 시퍼렇다, 푸르스름하다, 파르스름하다 등의 활용형이 있기는 하나, 각각에 표준색이나 기준색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색을 지칭하는 순우리말 단어가 왜 이토록 적은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도리는 없다. 근대 이전 우리나라에서 염료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현상과도 선후 관계를 따지기 어렵다. 다만 사물에 다른 색을 입히는 일이 아주 드물었으며, 서민의 경우에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만 지적해 둔다. 건물에 색을 입히는 단청조차 왕궁과 사찰 등에만 허용되었다. 1903년 미국의 에드윈 비니와 해럴드 스미스가 목탄과 기름을 혼합한 필기구를 만들어 크레용이라고 이름 붙였다. 크레용이란 초크(chalk)와 오일리(oily)의 프랑스어 발음을 합성한 것이다. 처음 검은색뿐이었던 이 물건에는 이후 다른 색상들이 추가됐는데, 종이에 잘 묻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1926년 일본 문구상 사쿠라상회에서 파스텔에 오일을 섞은 물건을 개발해 크레파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크레용과 파스텔에서 앞 두 글자씩을 딴 ‘상품명’이었다. 일반 명사로는 오일파스텔이라고 한다. 크레파스는 발명되자마자 색칠 공부 도구로 초등학교 교실에 침투했다. 학부모들의 학비 부담 능력이 제고됨에 따라 색깔도 계속 늘어났다. 현대인은 크레파스를 통해 색채 표준을 익힌 사람들이라고 해도 좋다. 이 물건은 사람들의 색감을 확장시켰을 뿐 아니라, 색에 대한 세계적 표준을 세우는 데에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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