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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연철 칼럼] 협상의 도이머이

등록 2019-02-24 18:26수정 2019-02-25 09:32

호찌민이 남긴 실용주의는 현대 베트남이 걸어온 길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986년 12월 6차 당대회의 노선 전환도 마찬가지다. 바로 ‘도이머이’다.

도이는 바꾼다, 머이는 새롭다는 뜻으로 말 그대로 도이머이는 ‘새롭게 바꾼다’이다. 농민들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말로 정책 전환을 선언했다.
김연철
통일연구원 원장

“규모가 작은 파리로구나.” 1956년 북한의 문화대표단을 이끌고 하노이를 방문했던 소설가 송영의 말이다. 하노이, 강과 강 사이를 뜻하는 중국어 ‘하내’의 음을 빌린 이 도시는 프랑스 인도차이나 연방의 수도였으며, 30년 동안 이어진 ‘만일의 전쟁’의 사령부였고, 21세기 가장 역동적인 개방도시다. 사연이 많은 도시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가르는 역사적인 회담이 열린다. 싱가포르에서는 만남 자체가 역사였지만, 하노이는 성과가 필요하다. 협상의 지혜를 하노이가 걸어온 길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노이는 호찌민의 도시다. 호찌민을 평가하는 수식어가 적지 않지만, 나는 그중에서 ‘가능한 일을 하려는 사람’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호찌민은 이념이 아니라 현실을 중시했고, 이론이 아니라 현장을 강조했다. 언제나 자신의 이상을 현실의 조건에 맞추려 한 호찌민은 진정한 실용주의자였다.

호찌민이 남긴 실용주의는 현대 베트남이 걸어온 길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986년 12월 6차 당대회의 노선 전환도 마찬가지다. 바로 ‘도이머이’다. 도이는 바꾼다, 머이는 새롭다는 뜻으로 말 그대로 도이머이는 ‘새롭게 바꾼다’이다. 농민들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말로 정책 전환을 선언했다. 호찌민은 도이머이라는 말을 이미 1946년에 사용한 적이 있다.

베트남은 1979년 신경제 정책으로 변화를 시도했지만, 이후 보수파와 개혁파 사이의 갈등이 적지 않았다. 1986년의 도이머이는 개혁파의 승리였고, 확실한 노선 전환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우선적으로 전통적인 중공업 전략을 포기하고, 농업과 소비재 분야로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변경했다. 경제운영에서도 정부 개입을 축소하고 시장 기능을 확대했다. 그리고 경제의 문을 활짝 열었다. 수출을 장려하고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 제도를 도입했다.

국제사회는 베트남의 개혁개방 정책을 ‘부분적 급진개혁’으로 부른다. 시장가격의 도입과 대외개방은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사회적 혼란을 생각해서 농업과 국영기업 개혁은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경제개방은 베트남의 적극적 의지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핵심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었다. 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민간교류부터 시작했다. 베트남은 개방 의지를 미국 기업에 전달했고, 미국의 기업들은 관계 정상화의 여론을 만들었다. 1990년부터 미국과 베트남은 정부간 대화를 시작했고, 1995년 정식 수교했다. 양국의 무역 정상화는 수교 이후에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경제개방은 투자자의 신뢰를 얻는 과정이기에 확실한 개혁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도이머이 채택 이후 30년 동안 베트남의 연평균 성장률은 6% 후반이다. 개발도상국에서 보기 어려운 성공모델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베트남이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고속성장은 부패와 양극화, 경제구조의 불균형을 낳았다. 개방의 수준이 높아지면 당연히 국제경제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베트남은 위기의 순간을 집단지도체제 특유의 균형으로 이겨냈다. 물론 그 핵심은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실용주의다.

북한도 경제를 새롭게 바꾸려 한다. 김정은 위원장을 태운 기차는 중국 개방의 심장인 광저우를 거쳐 하노이로 간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참조할 수 있는 정책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 국가의 발전 경험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북한은 산업구조와 비교우위를 고려하여 자신의 몸에 맞는 발전전략을 찾을 것이다. 다만 경제를 ‘도이머이’하려는 북한의 확실한 의지를 읽을 필요가 있다. 상응조치에서 북한의 경제발전 의지를 고려하면 그만큼 비핵화의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과거의 시각이 아니라 변화하는 북한을 읽어야 협상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1954년 제네바회담으로 한반도는 냉전으로 돌입했고, 베트남은 분단되어 또 다른 전쟁으로 나아갔다. 전후 한반도와 인도차이나는 냉전과 열전의 공간으로 서로 영향을 끼쳤다. 2019년 하노이는 어떨까?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평화와 공동번영으로 잇는 상징도시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1997년 베트남전쟁의 주역들이 하노이에서 다시 만나 역사적인 ‘적과의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전쟁의 주역이었던 맥나마라 미 국방장관은 ‘오해 때문에 잃어버린 기회’를 한탄했다. 그리고 중요한 교훈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대화를 계속하라’고 강조했다. 평화를 만드는 지혜이며, 협상의 핵심이다. 어디 경제만 도이머이가 필요하겠는가? 협상의 도이머이도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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