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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면허증

등록 2019-02-27 17:59수정 2019-02-28 09:30

전우용
역사학자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게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는 없다. 일부 직종은 보통사람이 마음대로 진입할 수 없도록 국가가 면허 제도로 통제한다. 공인 자격증이 국가가 특정 직업인의 자격을 인증해주는 문서라면, 면허증은 자격 없는 사람이 특정 직종에 종사할 수 없게끔 장벽을 치는 증서이다. 예컨대 제빵사 자격증이 없어도 누구나 빵을 만들 수 있고, 빵집을 낼 수도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자격증이 없어도 화장할 수 있고, 화장을 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운전면허증 없이 운전하는 것이나 의사 면허증 없이 진료하는 것은 불법이다.

중세 유럽 도시에는 길드라는 동직자 조합이 있었다. 특정 업종에서 장인(匠人)이 되려면 오랜 도제(徒弟) 기간을 보내야 했으며, 도제에서 장인으로 승격하려면 길드 소속원들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특정 기능의 완성도는 그 업종에 오래 종사한 장인들만이 평가할 수 있다는 ‘전문가주의’는 여기에서 유래했다. 근대 국민국가는 길드들이 행사하던 권리를 몰수하여 자기 권리로 삼았는데, 이로써 국가 면허 제도가 탄생했다.

우리나라 면허 제도는 1880년대 중반 근대적 회사 출현과 함께 만들어졌다. 회사라는 새로운 경제조직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회사에 발급한 문서의 명칭은 ‘정부가 영업 활동을 허가했음을 인증하는 문서’라는 뜻의 인허장이었다. 1900년부터는 의사와 약제사 등에게도 인허장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 후, 인허장은 ‘특정한 행위를 할 때마다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증서’라는 뜻의 면허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식민지 통제 경제하에서 면허증 발급 대상은 인삼경작, 연초재배, 술빚기 등으로까지 계속 확대되었으나, 해방 후 자유경쟁 체제가 정착함에 따라 많은 일이 관청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는 일로 바뀌었다.

오늘날에는 의료업 종사자, 항공기나 중장비 조종사, 총을 다루는 수렵인 등 주로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에만 면허증이 필요하다. 현대 한국 성인 대다수가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증서라는 인식은 희박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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