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인류가 바퀴 달린 물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천년께부터였다. 고대의 바퀴는 큰 나무를 세로로 잘라 몇 조각을 이어 붙인 뒤 주위를 둥글게 마감해서 만들었는데 자체만으로 무게가 상당했다. 바퀴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가운데에 구멍을 뚫기도 했으나 이런 경우에는 내구력이 문제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바퀴 달린 탈것이나 운반 수단을 만들어 썼고, 사람이 끄는 것을 수레, 짐승이 끄는 것을 달구지라고 했다. 그런데 산과 고개가 많은 지형 때문에 수레나 달구지의 용도는 제한적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고개 너머까지 물건을 옮길 때에는 무거운 바퀴가 달린 수레보다 지게가 훨씬 편했다. 한국 수레의 혁신을 이끈 것은 1890년대에 도입된 자전거와 인력거였다. 낡은 자전거나 인력거에서 떼어낸 바퀴는 쇠테 두른 나무 바퀴보다 훨씬 가벼웠고 가격도 쌌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형식의 수레는 1900년대 중반께야 등장했다. 한국인들은 가벼운 바퀴를 단 새로운 수레를 짐차라는 뜻의 일본어 ‘구루마’라고 불렀다. 1907년 서울 사동(현재의 인사동)에 설립된 공업운수마차동창회사는 마차와 구루마를 제조하여 운수업을 영위했다. 1908년에는 일본인이 비료회사를 세우고 구루마를 대량 도입하여 서울에서 근교 농촌으로 분뇨를 실어 날랐다. 이후 꽤 오랫동안 구루마는 도시 내 대표적인 운반 수단이었다. 구루마가 늘어나는 속도에 비례하여 수천년간 한국을 대표하는 운반 도구였던 지게가 줄어들었다. 1920년께에는 자전거 뒤에 매다는 짐차인 리어카가 도입되었는데, 그 생김새가 구루마와 큰 차이가 없어 곧 두 용어가 혼용되었다. 해방 뒤 언어생활에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운동이 벌어지면서 1950년대 중반부터 구루마와 리어카 대신에 손수레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손수레는 쌀, 연탄, 배추 등 무거운 상품을 취급하는 상인들의 필수품이었을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삿짐 등 다량의 물건을 옮길 때 빌려 써야 하는 물건이었다. 이동 식당인 포장마차도 손수레로 만들었다. 오늘날 손수레는 폐지 줍는 노인들이나 사용하는 물건이 되었지만, 이 물건이 현대 도시 생활에 기여한 바는 결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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