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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기념탑

등록 2019-04-02 18:05수정 2019-04-02 19:19

 파리 에펠탑이 국기를 상징하는 삼색으로 물들어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파리 에펠탑이 국기를 상징하는 삼색으로 물들어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사람들이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 하다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 서로 말이 달라졌다.” 기독교의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다. 어느 종교에서든, 하늘을 향해 치솟는 모양을 한 탑(塔)은 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인간의 의지를 담은 성물(聖物)이다.

기원후 414년, 고구려의 장수왕은 자기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영구히 기리기 위해 큰 돌에 글자를 새겨 왕릉 옆에 세웠다. 기원후 561년에서 569년 사이에 신라의 진흥왕은 자기가 정복한 땅을 순시한 기념으로 여러곳에 글자를 새긴 큰 돌을 세웠다. 비(碑)는 인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우는 기념물이다. 전 세계 묘지에 숱하게 늘어서 있는 묘비(墓碑)들도 일종의 기념비다.

재료가 돌이든 나무든, 신을 섬기기 위해 짓는 건축물이 탑이고 사람을 기리기 위해 세우는 것이 비다. 신과 인간이 다른 만큼, 탑과 비를 혼동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근대 이후 한자문화권 나라들에서는 기념탑과 기념비라는 말이 함께 쓰이며, 둘의 형태가 뚜렷이 구별되지도 않는다. 큰 비석을 기념탑이라 부르기도 하고, 탑을 쌓아놓고 기념비라 부르기도 한다. 국가와 신의 역할이 뒤섞인 국민국가 시대의 문화 현상일 터이다.

1927년 11월23일, 신의주 용암산에서 ‘일로전역기념탑’(日露戰役紀念塔)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이것이 이 땅에 처음 세워진 ‘기념탑’이라는 이름의 구조물로 추정된다. 일본인들은 1900년에도 서울 남산에 청일전쟁 승전 기념 석재 구조물을 세웠으나, 이름은 ‘갑오역기념비’(甲午役記念碑)였다. 1929년에는 ‘오시마여단기념탑’과 ‘일본해해전기념탑’이 각각 서울 용산과 경남 진해에 건립되었다. 이후 전국 곳곳에 일본 국가와 관련한 기념탑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만들어졌다.

해방 두달 뒤인 1945년 10월, 오세창 등이 해방기념탑을 건립하기 위해 건설준비회를 조직했으나 목적은 이루지 못했다. 이듬해에는 기미독립선언기념사업회에서 기념탑을 세우려 했으나 역시 좌절했다. 독립선언기념탑은 1963년에야 아담한 규모로 만들어졌다.

3·1운동 100주년이다. 프랑스인들이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에펠탑을 세운 것처럼, 우리도 3·1운동 100주년 기념탑을 세우는 건 어떨까?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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