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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경자유전, 알리바이가 된 헌법 121조 / 안영춘

등록 2019-04-08 17:14수정 2019-04-08 19:08

‘경자유전’(耕者有田, 농사짓는 이가 논밭을 갖는다)은 유교의 오랜 이상이었다. 유교국가 조선의 기틀을 세운 정도전은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가 소유로 만든 다음 인구 비례에 따라 재분배할 생각”(<삼봉집>)이었다. 조선 후기 정약용이 주창한 ‘정전제’의 뿌리 역시 경자유전이었다. 그러나 정도전의 토지개혁안은 세에서 밀려 좌초했고, 정약용의 정전제는 책(<경세유표>) 속에만 머물렀다.

경자유전의 제도화는 역설적이게도 시장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이뤄졌다. 1948년 제헌의회는 헌법 제86조에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라고 명시했다. 이어 1949년 6월 이승만 정부는 ‘유상매입 유상분배’가 핵심인 농지개혁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앞서 미군정이 ‘유상매입 무상분배’를 추진하고 북이 1946년 5월 ‘무상몰수’ 토지개혁안을 통과시킨 것과 견주면 한계가 뚜렷했다.

여러차례 개헌에도 ‘소작 금지’ 조항은 유지됐다. 1987년 개헌 땐 “국가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경자유전’이 명기되기에 이르렀다.(제121조 1항) 그러나 하위 법률은 무섭게 역주행했다. 헌법의 ‘예외조항’(121조 2항)이 문제였다. 1996년 농지개혁법이 폐지되고 농지법이 제정된 뒤 개정을 거듭하면서 예외가 외려 본질이 됐다. 누구든 법망 사이를 오가며 사실상 농지를 무제한 소유하고 쉽게 전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소작농 비율은 65%에 이르렀다. 70여년이 지난 지금 임차농지 비율은 60% 안팎을 오간다. 그러나 이런 결과를 법률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제 헌법 121조는 농업 인구가 7~8%에 불과하고 땀 흘려 농사지어 봐야 생산비도 못 건지는 현실을 애써 가리는 알리바이 구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농지는 개발을 기다리는 대기번호표와 같다. 규제가 풀릴 때까지 돈을 묻어둘 자금력과 규제를 풀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놀이터다. <한겨레> 탐사기획 ‘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이 들춘 국회의원들은 두 힘을 다 가진 존재다. 그렇다면 경자유전은 이제 경제 정의와 민주주의 원칙으로 재정립돼야 하지 않을까.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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