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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 1년 / 고명섭

등록 2019-06-12 09:59수정 2019-06-12 12:07

지난해 6월12일 오전 9시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북-미 정상이 손을 잡았다. 70년 북-미 적대의 역사에 획을 긋는 첫 만남이었다.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두 정상은 머리말을 주고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사말은 다소 의례적이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일성에는 심사숙고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었다.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 북한 지도자로서 미국에 대한 적대와 불신이라는 ‘편견과 관행’을 끊어내는 결단의 용기가 필요했음을 내비치는 말이었다.

이날 두 정상이 발표한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은 첫 만남의 의미에 값하는 중대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북한과 미국은 새로운 북-미 관계를 수립해 나가고,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했다. 이 만남에 앞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한 북한은 정상회담 직후 미군 유해를 미국으로 돌려보내고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도 폐기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9월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미국이 상응조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처를 계속 취해나갈 뜻’도 밝혔다. 그러나 5개월 뒤 열린 하노이 2차 정상회담에서 북-미는 아무런 합의도 내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섰다.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핵심에 ‘신뢰 부족’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그 점을 예견한 듯 ‘상호 신뢰 구축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구절을 담았다. 첫 정상회담 뒤 북한은 미국에 ‘종전선언’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이 태도를 바꿔 경제제재 완화를 ‘신뢰 구축’ 조건으로 제시하자, 미국은 여기에 응답하지 않고 하노이 회담에서 ‘빅딜’ 문서를 내밀어 북한을 압박했다. 신뢰 구축 실패가 북-미 협상을 궁지로 몰아넣은 셈이다. 어디서부터 불신으로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할까. 미국이 압류한 북한 선박 ‘와이즈 어니스트’호를 돌려주는 것이 신뢰 증진의 새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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