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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성조기

등록 2019-06-18 17:18수정 2019-06-18 19:47

서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1908년 8월14일은 대한제국의 국경일인 개국기원절이었다. 이날 각 관청과 상점 정문에는 태극기가 게양됐는데, 유독 농상공부 청사에는 일장기가 걸렸다. 제 나라 국경일에 남의 나라 국기를 게양하는 것은 매국노 짓이라는 비난이 빗발쳤으나 문책받은 사람은 없었다. 일본을 제 나라처럼 여기는 관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1909년 초, 한국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순종 황제와 함께 전국 순행(巡幸)에 나섰다. 한국이 일본의 보호국이라는 사실을 전국 백성에게 알리려는 의도였다. 연도에는 친일단체 회원들이 태극기와 일장기를 함께 들고 도열했다. 이들 대다수는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자 미련 없이 태극기를 버렸다.

을사늑약 이후 이 땅에서 일장기는 태극기를 능가하는 특권을 누렸으나, 다른 나라 국기들은 그냥 그림 그려진 깃발일 뿐이었다. 미국 국기 ‘스타 스팽글드 배너’(The Star-Spangled Banner)를 ‘성조기’(星條旗)로 번역한 것이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한국인들도 1914년께부터는 이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1941년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뒤, 성조기는 한국인 절대다수에게도 적대국 국기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이 패망하자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인들은 성조기를 흔들며 미군을 맞았고, 미군정 중앙청사로 이름이 바뀐 구 조선총독부 청사에는 성조기와 태극기가 함께 걸렸다.

1948년 8월15일 성조기는 중앙청 국기게양대에서 내려왔으나, 뒤이은 6·25전쟁과 원조 경제 체제 아래에서 계속 특별한 지위를 유지했다. 전쟁 후 미군이 지어준 건물 외벽이나 미국이 지원한 원조 물자 포대에는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그려지곤 했다. 일장기와 태극기를 함께 들고 일본의 보호에 감사했던 사람들에게, 이런 그림은 낯설지 않았다.

2002년 12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두명을 추모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열렸다. 이듬해 삼일절, ‘애국세력’을 자처한 사람들이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들고 거리에 나와 미군한테 책임을 묻는 것은 이적행위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후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드는 것은 자칭 ‘애국세력’의 관행이 되었다. 저들의 진짜 애국심은 성조기와 태극기 중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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