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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에서] 범죄와 예술의 상관관계 / 이나연

등록 2019-07-01 18:10수정 2019-07-02 14:08

이나연
제주 출판사 ‘켈파트프레스’ 대표·미술평론가

최근 제주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 전국민의 관심사다. 연일 검색어 상위에 가해자의 이름이 오르고, 사형 청원서에 동참한 국민이 20만명을 넘는다. 이 살인사건은 시체유기와 훼손이라는 범죄의 잔혹성에 더해 가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끈다. 살인부터 유기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온다. 지역사회에서 큰 사건이 일어나면 사건 당사자의 출신 학교나 거주지 등을 따라가다가 금세 신상을 파악하게 된다. 가해자와 나는 같은 중학교를 나왔고 비슷한 또래다. 이 말은 학교를 같이 다닌 시기가 있다는 뜻이고, 복도에서든 매점에서든 서너번은 마주쳤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지금은 범죄자가 된, 한때는 평범한 여중생이었던 이와 그렇게 연이 있었음을 확인한다.

이 사건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떠올리게 했다. 악인 줄 모르고 평범한 일상을 수행하며 저지른 악에 대한 성찰을 담았던 이 표현이 조금 다른 의미로 와닿는다. 악의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다는 발견을 적용해 평범한 이웃이나 친구가 상황에 따라 악을 자행할 수 있다는 상상, 어쩌면 나라는 인간도 상황에 따라 범죄에 얽힐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으로도 이끈다.

이 살인사건으로 제주가 발칵 뒤집힌 터라 피해자를 알거나 가해자를 안다는 말들로 제주 출신 친구들과의 단체 채팅방이 시끄러운 날이 계속됐다. 기획하는 전시가 있어 베를린에 머물던 중에 들른 게멜데갤러리에서 또 한번 제주의 살인사건을 떠올리고 있었다. 충격적인 살인의 이미지는 예술가에겐 오래전부터 영감의 원천이었다. 요한의 머리를 든 살로메를 그린 베르나도 스트로치의 1625년 작과 적장이었던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잘라 손에 들고 있는 유디트의 이미지를 그린 크리스토파노 알로리의 1610년 작이 나란히 걸린 방이 있었다. 성서에서부터 남성을 죽인 여성의 이미지는 등장한다. 살로메와 유디트는 다양한 작가들이 수차례 작품 소재로 삼았다.

카라바조가 유디트를 묘사하는 방식은 좀 더 극적이었다. 그는 살인 후의 이미지가 아닌 목을 베는 장면 자체를 생생하게 구현했다. 카라바조는 <세례 요한의 죽음>(1607)으로 살로메의 사주로 처형당한 요한의 머리가 접시에 담긴 모습을 표현했다. 유디트의 이야기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이 막 잘리는 순간을 담았다. 카라바조는 실제 살인 전과가 있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여성이었던 젠틸레스키는 자신을 성폭행한 남성의 얼굴을 홀로페르네스에, 그 목을 베는 유디트의 얼굴에 본인을 빗대어 그림 속에서 상상살인을 한다. 예술가식의 범죄 혹은 복수는 그런 것이었다.

때로 범죄자의 상상력이란 예술의 상상력을 훨씬 웃돌고, 그 둘의 관계가 기묘하게 전복되기도 한다. 2017년에 열린 카셀 도쿠멘타 14에는 노인이 된 사가와 잇세이의 인터뷰 영상이 폐업한 두부공장에서 상영됐다. 그는 파리 유학 시절인 1981년 네덜란드 여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살인하고 그 인육을 먹은 범죄자다. 법망을 피해 감옥에 가지 않은 그는 만화책을 출간해 화제가 되는 등 자신의 범죄와 유명세를 팔아 생을 이어갔다. 베레나 파라벨과 루시엔 카스텡-테일러의 영상 설치 <식사 손님>(Commensal)은 지금은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늙은 사가와가 살인과 식육을 추억하는 만화책을 넘겨보며 동생과 대화하는 장면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이는 마치 사가와 잇세이라는 예술가의 생애에 걸친 퍼포먼스를 영상작가가 기록한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범죄가 예술의 소재인지, 범죄 자체가 예술인지 혼란스럽다.

한달이 넘게 수많은 이야기가 난무할 때까지 제주에서의 살인사건은 여전히 명확한 증거물은 확보하지 못한 채 조사가 진행 중이다. 진실은 밝혀지고, 범죄는 대가를 치르는 때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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