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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내신성적표

등록 2019-09-10 17:59수정 2019-09-10 18:55

전우용
역사학자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신’(申)이라고 했는데, 일본에서는 굳이 ‘상신’(上申) 또는 ‘품신’(稟申)이라고 했다. 내신(內申)도 일본식 한자어로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되는 상신’이라는 의미이다. 개항 이후 주조선 일본공사가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보고서 중에는 ‘~에 관한 내신’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이 더러 있다. ‘극비’(極?)나 ‘비’(秘) 정도는 아니지만, 지휘-보고 계통 밖에 있는 사람이 봐서는 안 되는 문서라는 뜻이다.

일본인들은 하급 학교에서 상급 학교에 학생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내신이라고 했다. 학습의 누적 체제로서 학제(學制)를 만든 것은 근대 교육의 특징이지만, 본래 한 단위의 학습은 그 자체로 완결적이었다. 상급 학교에 입학하려는 학생에게 필요한 서류는 하급 학교 졸업장뿐이었다.

일본에서 ‘내신성적’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께부터였다. ‘하급 학교에서 상급 학교로 올려 보내는 학생 성적에 관한 내밀한 정보’라는 의미였다. 당시 일본 교육당국은 입시난 완화책으로 상급 학교 입시에 내신성적을 반영하도록 했지만, 하급 학교 교사와 학부모가 짜고 벌이는 ‘내신 부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20년대 말부터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적색 사상을 뿌리 뽑기 위해 내신을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사상이 불온한 학생이 상급 학교에 진학하여 ‘지식인’이 되는 길을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1939년부터 식민지 조선에서 입학 전형에 내신이 포함된 것도 이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내신제도가 시행됨으로써 학교는 감옥에 가까워졌다. 교사는 간수의 눈으로 학생을 관찰하고 그의 행적을 세세히 기록했다. 독립운동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만으로 자식에게 죄인이 돼 버렸다. 일본 군과 경찰은 교사가 작성한 내신서를 ‘교육 외 목적’으로 이용하는 걸 당연시했다.

한국에서 대학 입시에 내신을 다시 반영하기 시작한 것은 1981년이고, 2000년대에 들어 그 반영 비율은 급격히 높아졌다. 현재는 교실의 황폐화를 막기 위해 내신제도가 꼭 필요하다는 주장과, 교사와 학부모의 사적 관계에 좌우되는 내신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지만, 어쨌거나 내신 기록을 ‘교육 외 목적’으로 빼돌리는 행위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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