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승
총괄부국장
지난 주말 열린 서초동 촛불집회 현장 생중계를 집에서 지켜봤다. 3년 전 국정농단 규탄 촛불집회 때 열기가 새삼 떠올랐다. 일주일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촛불집회와 다른 점이 눈에 들어왔다. 극우 집회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태극기가 등장하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 검찰개혁 구호가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깨시민’의 정치 감각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전면에는 ‘이제는 울지 말자, 이번엔 지켜내자, 우리의 사명이다’라는 문구가 선명히 새겨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자책했던 심정이 오롯이 배어 있는 듯했다. 이번에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시민들 사이에 이심전심 통하는 끈끈한 정서적 동질감을 확인하는 상징일 게다. 그래서일까. 한눈에도 40~50대 중장년층이 많았다. 바로 이틀 전 개천절에 열린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보다 한 세대쯤 ‘젊은’ 시민들이다. 서초동 촛불집회 말미에 가수 이은미가 ‘아침이슬’을 불렀다. 3년 전 탄핵 촛불집회에서 수십만명이 떼창을 할 때 카메라에 포착된 시민들의 절실한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침이슬’이란 노래를 모른다는 딸에게 ‘조국 정국’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가 식탁이 어색해졌다.
서초동 촛불집회의 공감대는 뭘까? 시민들의 말을 들어보자. 훨씬 부패한 이들이 정의와 공정을 “터진 입이라고” 들먹거리는 데 대한 모멸감, 무소불위 검찰이 “주권자가 선택한 정치”를 좌지우지하려는 데 대한 놀라움과 두려움, 시민의 힘으로 “국정농단을 심판”했던 자신감과 믿음 같은 게 복합적으로 묻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조국 정국’은 애초 인사청문 절차를 통한 장관 후보자 검증으로 끝났다면 상황과 결과가 꽤 달랐을 것이다. 야당과 보수 언론의 광풍과는 별개로, 장관으로서 도덕적 문제와 국민의 실망이 드러났으니, 대통령과 여당의 선택도 달랐을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이 뛰어들면서 사태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검찰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퇴전의 각오다. 대통령의 개혁 지시 하루 만에 ‘이 정도면 되겠느냐’는 식으로 특수부 축소안을 던졌다. 짜장면을 먹은 게 아니라 한식을 먹었다 하고, 실제 압수수색과 조사는 몇시간밖에 못했다며 시시콜콜 대거리를 한다. 아마도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 의지라 말하고 싶겠지만, 촛불을 든 이들은 주권자의 선택까지 훼손하는 검찰 권력의 무도함을 스스로 고백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치권은 자그마한 사실 쪼가리를 따지고 들며 이번 사태를 대결 양상으로 변질시켜선 안 된다. 조국 사퇴나 검찰개혁을 정치적 승부의 문제로 보는 순간, 해법을 찾기는 더 힘들어진다. 두 거대 정당이 지지층 확보를 위한 세 대결과 내년 총선 셈법만을 고민한다면 더욱 그렇다. 진실은 늘 서로 전혀 다른 사실들의 어중간쯤에 있을 거라 생각하는 이들에게 ‘조국 정국’은 가치 없는 정쟁이 되고 합리적 시민들은 도피해버린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국 정국’은 진보 지지층에 큰 상처를 냈다. 젊은층 역시 진보 정부의 도덕성과 일관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자녀 입시와 사모펀드 투자 의혹에서 나타난 대한민국 1%의 ‘합법적 특권’에 지지를 철회하거나 멈칫거리는 이들이 많다. 사법 절차로 유무죄를 가리겠다는 태도는 더 큰 실망을 부르고, 검찰개혁 필요성도 ‘토사구팽’하려 하니 ‘구교주인’하는 게 아니겠냐는 냉소에 가려질 것이다.
촛불로 기억하는 장면들이 여럿 있다. 시민들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미선이·효순이를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참지 못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규탄하러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세계사에 기록될 현직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전혀 다른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다시 불과 몇년 만에 다시 주권자들이 촛불을 들었다. 조국 이후와 이전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다시 한번 촛불은 그 풀지 못한 숙제의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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