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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벤처 코리아’ 의 흥망

등록 2005-12-28 18:30

홍기빈 캐나다 요크대 박사과정·정치경제학
홍기빈 캐나다 요크대 박사과정·정치경제학
야!한국사회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면 나라 전체가 노다지와 같은 초과 이윤을 좇는 ‘벤처’기업처럼 되는 때가 있다. 국민국가는 본질적으로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국민들의 여론을 일으켜서 그것을 기초로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해내는 장치이며, 거기에 필요한 각종 제도와 기관·기구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래서 국가와 시민사회와 국민 모두가 그 노다지의 꿈으로 똘똘 뭉쳐 혼연일체가 된다. 1720년 영국의 ‘국민 기업’이었던 남대서양 주식회사(South Sea Company)의 성공도 이렇게 국민국가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벤처기업 창업으로 연결시킨 것에 비밀이 있다.

현재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줄기세포 허브’의 꿈은 이 남대서양 주식회사와 같은 ‘벤처 코리아’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계속되는 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지배층의 처지에서는 ‘세계화’, ‘시장’, ‘경쟁력’ 등 현재의 지배적 경제 담론의 꼭지말들과 어우러지면서 ‘미래의 비전’으로서 국민들에게 내놓을 수도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음은 분명하다. ‘미래의 세계 의료시장에 지각 변동을 가져올’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와 ‘줄기세포 허브’로서의 대한민국의 전망은 이러한 필요에 나무랄 데 없이 꼭 들어맞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청와대와 정치권은 황 박사에게 온갖 월계관과 찬사를 갖다 바친다. 언론은 근거도 의심스런 ‘33조의 기대 수익’이니 ‘다시 춤추는 강원래’ 등의 언사들을 사용하여 “바람”을 잡는다. 국민국가의 볼모인 국민들은 별다른 도리 없이 황우석 박사를 이순신 장군으로 착각하게 되며, 그가 성공하면 자신들도 골고루 “대박”을 맞게 될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이렇게 ‘국익’으로 합의된 사항이므로 정부는 아무런 저항 없이 무제한의 지원과 함께 몇백억의 시초 펀딩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국민 전체가 혼연일체가 되어 강력한 벤처기업을 이루면 세계적으로도 여기에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어서 이들이 곧 호응하여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이루어낸다. 이제 황우석 박사의 노벨상 수상이 세계 여기저기서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파국이 벌어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과학적 연구의 절차와 원칙, 생명 연구의 윤리, 독립적 언론의 취재와 보도, 정부의 합리적 감사와 감시, 그밖에 무수한 민주 사회의 원론적인 상식이 그 ‘국익’을 앞세운 비합리성에 얼마나 가볍게 무시당하는지를 똑똑히 목도하였다. 이 비합리성과 부조리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는 이 ‘벤처 코리아’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정치 경제의 상황과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의 지배층들은 또 다른 벤처 프로젝트를 내걸 유혹을 느낄 것이다. 특정 인물이나 첨단 기술을 내걸 이유는 없다. 국토와 지도를 바꾸어 놓을 대규모 건설 공사일 수도 있고, 사회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 대규모의 기업 지원 정책일 수도 있다. 현란한 수사와 천문학적인 수치들로 치장한 채 세계화와 시장 경쟁시대에 대한민국에 “대박”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의 방안이자 “국익”이라고 제시할 것이며, 그 장밋빛 전망에 취한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하거나 이성적으로 접근할 것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 들 것이다.

솔직히 황우석 개인의 도덕성이나 비행에는 별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이 흥망의 롤러코스터를 지겹게 되풀이할 ‘벤처 코리아’가 계속될까봐 두려울 뿐이다.

홍기빈/캐나다 요크대 박사과정·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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