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잭오랜턴. “랜턴의 잭”(Jack of Lantern)이다. 달랑 랜턴 하나 들고 영원히 방황한다. 한때는 잘나갔다. 악마도 속여 넘긴 사람이다, 내가.
살아서 착한 일을 한 기억이 없다. 사탄이 내 소문을 듣고 지옥에 데려가 측근으로 삼고 싶어 할 정도였다. 하지만 저승에 좋은 자리가 나건 말건 나는 갈 생각이 없었단 말이지. 그래서 사탄이 나를 데리러 올 때마다 골탕을 먹였다. 동전으로 변신하라고 부탁한 다음 십자가가 든 호주머니에 집어넣는다거나, 나무에 오르라 하고 밑동에 십자가를 새긴다거나. 짓궂은 장난을 몇번 겪더니 악마도 나를 포기했다.
그렇다고 인간이 영원히 살 수는 없지. 어느 날 나는 죽었다. 못된 짓만 하고 살았으니 천국은 갈 수 없고 지옥 역시 나란 녀석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승 저승의 춥고 어두운 경계를 홀로 영원히 떠도는 신세가 됐다. 나는 사탄에게 간청했다. “그래도 아는 사인데 사정 좀 봐주쇼.” 타다 남은 장작 하나를 악마가 내게 주었다. 나를 동정해서였을까? 아니면 더욱 약 올리고 싶어서?
아무려나 불씨를 꺼트리지 않아야 했다. 처음에는 순무, 나중에는 호박의 속을 파서 불잉걸을 담았다. 핼러윈에 호박 랜턴을 만들며 당신들은 나를 기억한다. 신도 악마도 두려워 않던 나를.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