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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서점

등록 2019-11-05 18:05수정 2019-11-06 09:38

전우용 ㅣ 역사학자

2006년 8월, 서울대학교 도서관은 인피(人皮)로 제본된 희귀 도서를 공개했다. 1670년 네덜란드에서 발간된 책으로 제목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중국 제국에서 행한 기념비적 임무>(Gedenkwaerdig bedryf der Nederlandsche Oost-Indische Maetschappye, op de kuste en in het keizerrijk van Taising of Sina)였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왜 이런 엽기적인 짓을 했을까?

한자 책(冊)은 한 줄로 묶인 죽간(竹簡) 모양을 그린 상형문자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 동아시아에서는 대나무를 마디 단위로 잘라 다듬은 뒤 그 위에 글씨를 썼으니, 이 대나무 마디를 죽간이라고 했다. 유럽과 서아시아 등지에서는 대나무 마디 대신에 얇게 가공한 양가죽을 썼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적었고 글씨 쓰는 재료도 만들기 어려웠던데다가,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선현(先賢)이 갈고닦은 지혜였으니, 고대의 책은 귀물(貴物)이자 보물(寶物)이었다. 종이와 활판 인쇄술이 발명된 뒤에도 책을 보물 취급하는 관념은 쉬 바뀌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책 표지도 대개 가죽으로 만들었으니, 우리는 지금도 표지가 두꺼운 책을 ‘양장본’이라고 부른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이 사람 가죽으로 표지를 만든 것은 특별히 귀한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옛사람들은 이 귀한 책을 어떻게 구했을까? 책의 종류도 많지 않았고 구매자도 적었기 때문에 조선 후기까지는 거간에게 부탁해 구하거나 직접 베끼는 것이 보통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책을 파는 점포는 18세기 중반에 처음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영조 대에는 약계책사(藥契冊肆)라는 것이 있었으며, <동국여지비고>는 정릉동 골목 입구와 육조 앞에 책방이 있다고 기록했다.

우리나라에 서점이 본격 출현한 것은 새로운 인쇄 기술이 도입되고 신지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1890년대 이후였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강점할 무렵에는 서울에만 70개 가까운 서점이 있었다. 20세기의 서점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상과 지식을 전달하는 주요 통로였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기 전에, 서점은 사람들 가까운 곳에서 하나둘 자취를 감추었다. 사람이 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이성의 진보가 계속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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