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0 17:57
수정 : 2019.11.11 02:08
허승규 ㅣ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 대표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 정치에서 익숙한 일들이 일어난다. 선거의 주요 행위자인 정당들이 이합집산하는 장면이다. 여당이 야당이었던 시절의 민주 대통합 논의는 보수 대통합 논의로 바뀌었다. 2016년 거대 양당이 싫은 유권자들은, 짜장면과 짬뽕만 있는 메뉴판에서, 선거철 신메뉴를 선택했다. 국민의당 돌풍은 짜장면/짬뽕 구도에 대한 불만 표출이다. 선거가 끝나면 메뉴들의 이름이 바뀌다가, 다시 짜장면/짬뽕 구도로 돌아간다.
최근 조국 정국 이후, 무당파가 증가하면서, 다시 신메뉴 논의가 한창이다. 진보정당들이 고군분투하지만 아직 정식 메뉴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치에서 간판을 바꾸지 않는 오랜 맛집, 단골 메뉴를 찾기 쉽지 않다. 정당의 분열과 통합이 잦으면서, 분열과 통합의 명분은 불분명하다. 한국은 정당 저신뢰 사회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여당과 야당이 번갈아 집권하여 정부를 운영하는 체제다. 전체주의 사회와 달리 일당독점이 아닌 정치 다양성, 정당 다원주의를 지향한다. 우리 삶의 중요한 문제를 유능하게 다룰 좋은 정당이 많을수록 우리 삶은 풍성해지며, 말뿐이 아닌 삶을 바꾸는 민주주의가 된다. 정당은 선출되지 않은 행정 관료와, 거대 자본의 영향력 가운데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보호하고, 기후위기와 불평등 같은 사회 문제를 두고 공익적으로 경쟁한다. 정당은 어떤 정체성을 지향하고, 어떠한 정치적 가치를 추구하는지 선명해야 한다. 그것이 불분명하다면, 특정 정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으며, 정당의 신뢰가 쌓이기 어렵다.
한국 정치에서 좋은 정당의 의미는 무엇일까. 정치혐오 가득한 시민들에게 좋은 정치의 경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먹고살기 바빠서 정치 참여가 어려운 시민들에게, 정치 참여의 비용이 높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참여의 비용을 감당하는 조직적 기능을 해야 한다. 불분명한 정치 공학적 경쟁보다 선명한 내용과 비전을 내세운 경쟁으로 선거의 공익적 효과를 높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들을 해낼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어느 조직이건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조직에 대한 소명으로 꾸준히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좋은 정당에 대한 소명을 지닌 이들이 꾸준히 정당에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의 주요 정치인이라면 정당을 선거용 조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본인이 속한 정당을 가꾸는 일에 소명이 있어야 한다.
좋은 정당을 만드는 일은 자기 정당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의 체질을 바꾸고 한국 민주주의를 살리는 일이다. 시민사회/정치사회/정부권력을 관통하여 가장 아래 시민의 일상과 최고 권력의 정점을 연결하는 통로가 정당이다. 최고 권력도 가장 낮은 시민 아래 복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당이다. 정당 간 이합집산을 주도하는 정치인들에게 좋은 정당 만들기의 소명이 보이지 않는다. 선거 때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길게 보고 정당을 가꾸는 정치 리더십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국회 바깥에 있는 원외정당도 마찬가지다. 좋은 정당 만들기의 소명을 외면하고, 유권자들의 이미지만 획득하려는 선거용 이벤트 정치는 오래갈 수 없다. 한두번의 선거에서 성과를 얻을 수 있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자격 없는 이들에게 주어진 권력은 위험하다. 정치의 순리가 그렇다. 여야, 원내외를 막론하고 선거를 앞둔 정당 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한다. 좋은 정당 만들기가 최선의 선거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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