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7 18:19
수정 : 2019.11.18 02:37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말 속에는 인간만의 독특함을 짐작할 수 있는 증거가 숨어 있다. ‘없다’도 그중 하나인데, ‘없다’의 발견으로 우리는 보이는 것에만 반응하던 짐승에서 상상하고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로 바뀌었다.
우유를 먹다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그걸 아빠가 몰래 다 먹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아들이 다음날 냉장고 문을 열어 보고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소리를 지른다. “엥, 우유가 없네!?” 냉장고에 우유가 없다는 말을 하려면 냉장고에 우유가 있던 장면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없는 게 어찌 우유뿐이겠는가. 코끼리나 젖소도 냉장고에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하필 우유의 부재를 떠올리는 건 어제의 우유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걸 떠올리지 못하면 ‘없음’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눈앞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게 훨씬 많다. 그러니 그냥 무심히 행동을 이어가면 된다. ‘없음’(부재)을 알아차리는 건 ‘있음’과 대응될 때만 가능하다. 없음은 있음의 그림자이다.
‘생각’이란 ‘없는 것’을 떠올리는 일이다. ‘없음’의 관념이 생기고 나서야 우리는 상상력, 그리움, 욕망을 갖춘 존재가 되었다. ‘없다’는 말은 지나간 시간을 소환한다. ‘없음’의 발견으로 인간은 시간의 폭을 비약적으로 넓혔다.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의 시간까지 당겨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와 미래가 ‘없음’을 디딤돌 삼아 우리 곁에 자유자재로 머무르다 간다. 물론 ‘없음’이 ‘있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잠깐만 방심해도 순식간에 욕망이 밀고 들어온다. 과한 말이지만, 있으면 동물에 가깝고 없으면 인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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