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9 18:04
수정 : 2019.11.20 12:20
박임근 ㅣ 전국1팀 기자
“불법으로 비료를 생산한 비료공장뿐 아니라,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행정관청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지난 14일 오전 전북 익산시 국가무형문화재통합전수관에서 열린 ‘장점마을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 실태조사 발표회’에는 최재철 주민대책위 위원장의 격앙된 목소리가 울렸다. 환경부 역학조사에 대한 주민의 입장문을 전하는 자리였다. 18년간 고통을 받아온 주민들이 함께했다.
장점마을은 정부가 환경오염과 비특이성 질환인 암의 역학적 관련성을 처음으로 확인한 사례다. 비특이성 질환은 원인이 특정되지 않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 질병을 말한다. 따라서 그만큼 직접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어렵고 모호하다. 역학조사 용역을 맡은 환경안전건강연구소 김정수 소장은 “주민청원으로 환경부가 실시한 주민건강영향조사 14건 중에서 오염원(공장)과 주민 암 발생 간의 역학적 관련성을 판단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결과를 얻기까지 주민들의 싸움은 지난했다. 지난 6월20일 익산의 같은 장소에서 정부 결과에 대한 주민설명회가 있었다. 14일 최종 발표회와 같은 자료였지만 결론은 달랐다. 6월에는 비료공장 가동과 마을주민의 암 발생 사이에 연관성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추정만 한 것이다.
주민들은 모호한 결정을 반대하며 투쟁에 나섰다. 환경부, 국회, 연초박(담뱃잎 찌꺼기)을 공급한 케이티앤지(KT&G) 등을 방문해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5개월여 만에 결론은 바뀌었다. 환경부는 “6월에는 조사 결과에 대해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최종 결론을 어떻게 내릴지 역학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등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종합적으로 최종 결론을 도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문선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 민간위원은 “환경부가 직접 인과관계를 적시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주민들의 끈질긴 투쟁이 없었다면 그런 입장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태홍 정의당 사무총장 겸 익산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6월 상황으로는 전북 남원 내기마을처럼 모호한 결론으로 끝날 공산이 컸다. 하지만 주민들의 노력으로 민관협의회가 꾸려졌고, 이 협의회에 참여한 민간위원들의 헌신적인 자원봉사가 크게 유리하도록 작용했다”고 말했다. 수년 전 전북 남원시 이백면 내기마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내기마을은 인근 아스콘공장으로 인해 집단 암 발병 의혹이 제기됐다. 약 400쪽에 이르는 중앙암역학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직접적인 연관성을 규명하지 못했다.
약 1년 전인 지난해 12월 장점마을을 취재했다. 당시 마을에서 만난 주민 이아무개(80)씨는 남편과 아들을 각각 담낭암과 위암으로 잃었다고 했다. 이씨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 평소 냄새가 심했기 때문에 서 있지 말고 드러누워 있으라고 자주 얘기했다. 그러면 고약한 냄새를 조금이라도 덜 느꼈다”고 말했다. 당시 최재철 위원장은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환경부 차관이 다녀간 것 말고는 정치권과 행정에서 관심이 없고 팔짱만 끼고 있다”고 전했다.
행정당국은 뒷북을 쳤다. 지난 14일 최종 발표회가 있던 날, 익산시는 공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와 관련자 엄중 문책을 약속했다. 그동안 주민들이 수십차례 방문했고, 시청 누리집에도 민원을 제기했지만 제대로 답해주지 않던 익산시였다. 전북도도 다음날인 15일 공식 사과했다. 전북도는 “불법을 한 금강농산은 2003년 7월 전북도에 비료생산업 등록신고를 하고 유기질 부산물 비료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2008년 2월에 비료관리법 개정으로 관리 권한이 전북도에서 익산시로 이관됐으며, 환경오염물질 배출시설과 관련 사항은 익산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렇지만 상급기관으로서 무한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익산시만 잘못이 있는 것일까. 만약 비슷한 사건이 주민 1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 아니라 서울에서 발생했다면 1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을까.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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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 장점마을 주민 등이 지난 9월26일 서울시 강남구 케이티앤지(KT&G) 사옥을 항의 방문해 집단 암 발병에 대한 책임을 져라고 촉구했다. 장점마을주민대책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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