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9 18:04
수정 : 2019.11.20 12:25
전우용 ㅣ 역사학자
한자 자전에서 武(무) 자를 찾으면 ‘호반 무’라고 쓰여 있다. 이 글자의 뜻이 ‘호반’이라는 것인데, ‘하늘 천(天)’ ‘충성 충(忠)’ 등의 예에서 보자면, ‘호반’은 순우리말이거나 아주 쉬운 한자어여야 할 테지만, 호반은 지금 일상에서 전혀 쓰지 않는 단어다. 옛날에는 문관을 동반(東班), 무관을 서반(西班)이라 하여 각각 왕의 자리를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에 시립하게 했고 이 둘을 합쳐 양반(兩班)이라 했다. 문반 관복 가슴 부위에는 학을 수놓은 흉배를 붙였으므로 학반(鶴班)이라고도 했고, 무반 관복에는 호랑이를 수놓은 흉배를 붙였으므로 호반(虎班)이라고도 했다. 호반이란 ‘무관’(武官)이라는 뜻이었으니 ‘호반 무’라는 설명은 동어반복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대 사람들은 호반이 무슨 뜻인지 직관적으로 알았다.
의복이나 모자 등에 수를 놓거나 목재나 금속재의 작은 물건을 달아 소속과 직위를 표시하는 관행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영국인들이 ‘본인의 소속이나 취향 등을 나타내기 위해 의복에 부착하는 것’, 특히 ‘남의 종이나 추종자들이 충성을 표시하기 위해 부착한 것’들을 배지(badge)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1520년대부터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뱃지’ ‘빳지’ 등의 단어가 사용된 것은 1920년대 중반부터지만, 이에 해당하는 물건들은 1890년대부터 휘장(徽章)이나 기장(記章)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됐다. 1895년 조선 정부는 체전부(遞傳夫)들에게 우체기장을 달게 했다. 1899년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 중의원 의원 오미와 조베에에게 금으로 정2품 기장을 만들어 지급했다. 1899년에 제정된 ‘표훈원 관제’와 이듬해 제정된 ‘훈장조례’는 기장에 관한 규정을 명문화했다. 각 학교 학생들의 모표도 이 무렵에 생겼으며, 1907년에는 휘문의숙에서 교기와 오얏꽃 문양을 합쳐 1등 학생에게 ‘기념 휘장’을 지급했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금배지를 달기 시작한 것은 1954년 개원한 제3대 국회부터다. 금광을 소유한 자유당 정명선 의원이 당선자들에게 배지를 만들어 주라고 금을 기부한 데에서 비롯했는데, 이후 국회의원 ‘권위’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배지는 본래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종의 상징’이었다는 사실, 주권자와 그 종들 모두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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