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9 18:40
수정 : 2019.11.20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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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3차 회의에 미국 쪽 수석대표로 참석한 제임스 드하트 국무부 선임보좌관이 2019년 11월19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미국대사관 공보과에서 협상 결과를 발표하고 브리핑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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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3차 회의에 미국 쪽 수석대표로 참석한 제임스 드하트 국무부 선임보좌관이 2019년 11월19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미국대사관 공보과에서 협상 결과를 발표하고 브리핑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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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외부에 핵개발 의사를 처음 내비친 건 1990년 9월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교부 장관이 방북했을 때였다고 한다. 돈 오버도퍼의 책 <더 투 코리아스>(한국 번역본 ‘두 개의 한국’)를 보면, 당시 김영남 북한 외교부장은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한-소 수교 계획을 알리자 “소련이 남한을 승인하면 1961년 북-소 안보조약의 근간이 무너질 것이다. 동맹이 사문화하면 북한은 ‘원하는 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더는 얽매이지 않을 것”이라고 쏴붙였다. 북한이 말한 ‘원하는 무기’가 핵무기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놀란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핵개발을 만류했으나, 북한은 3년도 채 안 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결행했다. 제1차 북핵위기의 시작이었다.
이 이야기가 생각난 건, 얼마 전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이 “보통의 미국인은 주한·주일미군을 보면서 몇몇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 그들이 왜 거기에 필요한가. 이들은 아주 부자나라인데 왜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가”라고 말한 것 때문이다. 미군 고위 인사가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넌지시 압박하는 발언으로 읽히면서, 문득 주한미군이 정말 철수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도 북한의 선례를 따라 핵개발에 나서게 되진 않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남북 간 군사력은 재래식 무기만 놓고 보면 남한이 북한에 뒤질 게 없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군의 88%라는 평가가 공개돼 논란이 된 적이 있지만,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엔 남한의 전력이 북한을 10% 남짓 앞선 것으로 분석된 바 있다. 미국의 군사력 평가 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의 2019년 평가도 남한이 세계 7위로 북한(18위)을 앞질렀으며, 남한의 한 해 국방비는 북한의 40배를 넘는다.
문제는 북한의 핵무기다. 핵무기는 엄청난 파괴력 때문에 재래식 무기만으로 대처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을 할 때마다 국내에서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핵무장이나 미군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거듭 제기되곤 했던 배경이다. 그럼에도 이들 핵무장론이 한때 무성했다가 잦아들곤 했던 건 미국의 핵우산 제공 약속과 이를 뒷받침하는 주한미군의 존재 때문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국내 안보불안 심리가 증폭되고 이는 독자적인 핵무장론이 먹혀들 좋은 환경이 될 것이다. 남북 간 핵균형을 위해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적 대안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만약 사태가 이렇게 전개된다면,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을 그냥 두고 볼까. 아마 유엔 제재 등 강력한 징계 조처를 동원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또 한국의 핵무장은 일본을 자극해 동북아 핵도미노로 이어질 수 있다. 어떤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더라도 결말은 파국에 가깝다. 미국도 이런 상황을 결코 바라진 않을 것이다.
어떤 협상이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상대를 어르고 달래는 건 으레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다시는 얼굴 볼 일 없는 뜨내기 야바위꾼의 사기 행각이 아니라면, 아무리 협상이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 몇 푼 더 받아내려고 주한미군 철수까지 내비치는 건 오랜 동맹국이 차마 입에 담을 일은 아닌 것 같다. 주한미군은 논란이 일자 뒤늦게 트위터로 “미군이 무력충돌 예방과 억지를 위해 동북아에서 수행하는 안정화 구실을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우리에 있다”는 밀리 합참의장의 추가 발언을 강조했지만, 그다지 말끔하진 않다. 미국이 정식 방위비 분담금 협상장에선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끄집어낸 적이 없다고 하지만, 밀리 합참의장이 ‘외곽 때리기’로 역할분담을 한 건 아닐까 의구심도 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은 한국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우리뿐 아니라 일본에도 4배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미국 내에서도 과도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그렇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뜻을 굽힐 것 같진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동맹의 ‘뉴 노멀’은 어떤 모습일까. 우려가 앞선다.
박병수 ㅣ 논설위원
suh@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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