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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7 18:40 수정 : 2019.11.28 10:05

김종구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 결과는 가히 ‘멸문지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모질고도 혹독하다. 예전에 멸문지화는 대역죄를 저지른 죄인에 대한 형벌이었는데, ‘검찰 개혁의 아이콘’이라는 것만으로도 검찰에는 대역죄였을까.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10월 <한겨레>는 참여정부 첫해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했던 검사들을 다시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한 적이 있다. 당시는 문화방송 ‘피디수첩’ 수사를 비롯해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과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수사 등 정권의 입맛에 맞춘 표적수사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5년 전 현직 대통령과 ‘맞짱’을 뜰 정도로 기개를 과시한 검사들이었으니 검찰의 이런 비루한 모습에 뭔가 의미 있는 코멘트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착각이었다. 극도로 말을 아끼고 조심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만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참여정부에 비해 적어도 검찰에 적대적이지는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참여정부 시절 위축된 검찰의 권한을 되찾아야 한다”는 따위의 말을 접하면서 아득한 절망감이 몰려왔다. “엠비 정부 때가 가장 쿨했다”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말을 듣고 맨 먼저 떠오른 것도 그 검사들의 인터뷰였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검찰의 핏속에 흐르는 유전자는 똑같은 셈이다.

지난 9월2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촛불 문화제’에서 시민들이 “검찰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여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금 확인되는 바는 첫째, 검찰은 태생적으로 진보정권과는 유전적 코드가 맞지 않는 집단이라는 점이다. 살아온 삶의 이력이나 추구하는 가치 등 검사들의 전반적인 ‘정체성’ 자체가 진보정권과는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둘째, 검찰은 권력의 충견으로 기꺼이 용맹을 떨칠 수는 있어도, 자신들의 이빨을 약화하려는 시도는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 “마음이 놓이는” 보수정권과, “마음이 놓이지 않는” 진보정권을 대하는 검찰의 태도에 본질적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선출된 권력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무기는 검찰 수사의 독립,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등의 아름다운 단어다. 이런 지고지순한 명제 앞에 아무도 쉽게 이의를 달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말에는 함정이 있다. 독립은 곧잘 ‘독단’의 동의어가 된다. 수사를 할지 말지, 언제부터 시작해서 언제까지 매듭지을지, 어떤 강도와 범위로 수사를 진행할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이 모든 것이 검찰 마음대로다, 독립이라는 미명 아래 검찰은 수시로 독단을 행사한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권에 핵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검찰은 그 자체가 거대한 정치권력이며, 행보 하나하나가 정치적 함의를 띤다. 검찰 수사의 형식적 외관은 ‘정치적 중립’이지만 실체적 내용은 ‘고도의 정치행위’인 경우도 숱하게 많다.

울산지검은 지난해 3월 자유한국당이 당시 울산경찰청장이던 황운하 대전경찰청장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1년8개월이나 그대로 묵히고 있다가 엊그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했다. 검찰은 “신속한 처리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이에 앞서 왜 1년8개월은 가만히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수사하고 싶을 때 하고 말고 싶을 때 마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독단이다. 검찰은 이번 기회에 ‘검찰 저격수’라는 별명이 붙은 황 청장을 어떻게든 법률적으로 엮으려 할 것이다. ‘청와대 하명수사’라는 프레임을 통해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홍보하는 기회로도 활용하려 할 것이다. 정치적 중립을 가장한 정치적 의도의 지뢰는 이처럼 곳곳에 숨어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 결과는 가히 ‘멸문지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모질고도 혹독하다. 예전에 멸문지화는 대역죄를 저지른 죄인에 대한 형벌이었는데, ‘검찰 개혁의 아이콘’이라는 것만으로도 검찰에는 대역죄였을까. 그런데 정경심 교수의 기소내용을 보며 개인적으로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신문으로 치면 0.5단짜리 기사 10개를 모아 5단짜리 1면 머리기사를 만들었군.” 검찰은 이런 상황에서 늘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검찰은 진정 자신들이 형평, 공정, 인권 보호, 과잉 금지, 비례와 균형 등의 원칙을 잘 지키고 있다고 믿는 걸까.

“아이에게 망치를 쥐여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한국 검찰이 손에 쥔 망치는 계속 커졌지만 성숙한 어른으로의 성장은 지체됐다. 근원적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는 길은 과도하게 커진 망치의 크기와 무게를 줄이고 수사 기관 상호 간의 견제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제 망치를 조정하려 하니 검찰은 정치적 중립의 무기를 앞세워 여기저기 못질에 나섰다. 참으로 갈 길이 멀고도 험난하다.

편집인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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