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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5 18:19 수정 : 2019.12.06 02:37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3년 전으로 잠시 돌아가보자. 그때 우리는 3년 뒤 오늘의 문 정권을 기대했을까? 말은 촛불정권이라는데 민생과 관련되는 재벌정책, 조세정책, 부동산정책, 교육정책, 노동정책에서 지난 정권과 어떤 차이를 보여주었나?

“그런데 이상했어요. ‘김용균법’이 만들어진 다음에 현장 태안 분소에 갔는데 용균이 동료들이 다 술 먹고 힘 빠져 있고 화가 나 있었어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용균이법’ 안에 용균이가 안 들어 있다고, 그래서, 거기서 알았죠. 너무 엉망이 되었구나. 위험의 외주화 막겠다고 산업안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하위 법령인 시행령에서 다 완화시킨 걸 그때야 알게 됐어요.”

월간 <작은책> 최근호(2019년 12월호)와 한 인터뷰에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김용균재단 대표)씨가 한 말이다. 하루 평균 다섯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는 나라에서 김용균처럼 비극적 서사가 세상에 알려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은 통계 숫자에 묻힌다. 1년 전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보도됐을 때 수많은 동시대인이 함께 분노했고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조사위원회는 사고의 근본원인이 위험의 외주화, 다단계 하도급에 있다고 밝혔고, 제도 개선을 정부에 권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사위원회의 결과를 토대로 제도를 개선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국회 공방을 거친 뒤 ‘김용균법’이 통과됐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와 중대재해기업 엄중처벌 조항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허술한 법이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시행령에서 이를 더 완화해 김용균을 제외시켰다. 김용균법에 김용균들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산재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문 대통령의 말을 문재인 정부가 행동으로 부정한 셈이 됐다.

공자님은 “말은 항상 지나치고, 행동은 항상 미치지 못한다” “군자는 말의 지나침을 부끄러워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오늘의 집권세력은 행동이 말에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말과 행동이 반대인 모습을 보인다. 그들보다 더 자본친화적, 노동배제적인 자유한국당이 오른쪽에 버티고 있으므로 ‘노동존중’ 등 말과 이벤트로 그들과 차별성을 보이면 그만이라는 듯, 실제는 별 차이가 없다.

문 대통령은 취임 뒤 3일째 되는 2017년 5월12일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노동자들 앞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노동자들은 대통령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2년 반이 지난 오늘 노동자들은 “변한 게 없다”고 말한다. 박대성 인천공항지역지부장은 문 대통령에게 “청와대 감옥에 갇혀 살지 말고 공항에 와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라”고 요청했다.(<오마이뉴스>) 법외노조 명령을 취소해달라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듯이, 더도 말고 대법원 판결대로 해달라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요구도 문재인 정부는 응답하지 않고 있다.

취임 직후 공항공사 노동자를 찾아갔던 대통령의 행보와 함께 우리들로 하여금 “촛불정권이니 다르겠지!”라는 기대를 갖게 했던 ‘최저임금 1만원 공약’도 희망고문으로 끝났다.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말했듯이, “한 계급에게서 빼앗지 않고는 다른 계급에게 줄 수 없다”는 것은 명료한 제로섬 산술이다. 최저임금 인상분을 영세업자들을 수탈하는 재벌기업한테서 충당하거나 자영업자들의 버거운 임차료를 임대업자에게 매긴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정책이 동반됐어야 했는데, 이미 열악한 상태에 있는 자영업자들에게서 빼앗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연히 역풍이 불었는데 이를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뒷걸음질쳤다.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3년 전으로 잠시 돌아가보자. 그때 우리는 3년 뒤 오늘의 문 정권을 기대했을까? 말은 촛불정권이라는데 민생과 관련되는 재벌정책, 조세정책, 부동산정책, 교육정책, 노동정책에서 지난 정권과 어떤 차이를 보여주었나? 서울 아파트 값은 더 치솟았고, 교육정책은 정시 40%로 정하는 또 한차례의 시소게임으로 그만이었다. 자유한국당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현 집권세력에게서도 “왜 집권했느냐?”고 묻고 싶을 만큼, 집권의욕만 보일 뿐 정치철학이나 정책지향을 찾기 어렵다. 불온한 시선을 갖고 있어서겠지만, 이른바 문 대통령의 ‘복심’ ‘측근’ ‘실세’라 불리는 사람이 적잖은데 그들과 그들 주위 사람들이 모두 ‘민주건달’로 보인다. 과거에 잠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으로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완장을 차고 있는 인물들인데 그 도덕적 우월감이 더 위험하다.

국회는 언제나 그랬듯이 여야 대치상황을 연출하고 있지만 ‘삼성보호법’에서 보듯이 재벌을 위해서는 한통속이다. 무엇보다 의원들 자신이 ‘20 대 80으로 양극화된 사회’에서 ‘20’에 속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도 모두 ‘20’에 속한다. ‘80’을 위한 민생정책을 추진하려면 자유한국당의 반대는 물론 행정의 벽까지 돌파해야 하는데 그런 의지를 오늘의 집권세력 중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 이념의 추종자 김진표 의원이 차기 국무총리가 될 거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지난 정권 아래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려고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던 오늘의 집권여당은 테러방지법 폐기안을 제기했어야 마땅했다. 오늘 필리버스터로 국회를 마비시키고 있는 자유한국당을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정책정당의 일관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그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테러가 아니라 전쟁과 폭정이듯이, ‘80’에 속한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조국이다!”가 아닌 “우리가 김용균이다!”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국제정치의 현실 속에서 한반도의 위상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다. 오히려 시리아에 가깝다. 구미의 주류 미디어에 의해 의식세계를 점령당해 시리아보다 미국이나 유럽을 더 가깝게 느끼듯이, ‘20’에 속한 정치인, 연예인, 전문가집단이 등장하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80’의 의식세계는 온통 ‘20’의 것들로 채워져 그들에게 친근감을 느낀다. 공감과 감정이입을 통한 연대는 진보의 중요한 가치인데, ‘20’의 욕망, 가치관을 가진데다, ‘80’은 보이지 않으니 관심을 가질 수 없고,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니 연대도 불가능하다.

“서초동 집회가 부럽더라. 왜 노동자들이 죽는 문제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나오지 못할까. 우리도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이지 않나. 한해에 몇천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는 거니까. 그리고 그게 매년 반복되니까. 만일 노동자가 죽는 일로 그만큼 사람들이 모이면 분명 사회가 달라질 것 같은데 말이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대표변호사의 안타까운 술회가 내 가슴을 적신다. 산재사망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덜 나오도록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우리가 김용균이다!”라고 외칠 수 있기 바란다.

홍세화 ㅣ 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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