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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4 18:09 수정 : 2019.12.25 13:04

이상헌 ㅣ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샤워를 한다. 물론 안다. ‘아름다운 상상’을 허하지 않는 내 몸의 허허함을 아는 이들은 민망할 것이다. 더러는 극소량의 샴푸도 넘치게 하는 내 모발과 한줌의 샤워젤도 과분한 내 알뜰한 몸매를 부러워하거나 안타까워할 것이다. 하지만 샤워는 도저한 사색과 예술의 시간이 아닌가. 위대한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모처럼 목욕을 하면서 “유레카”를 외쳤고, 일상의 찌질함에 늘 목욕하는 우리는 샤워를 하면서 노래방에서 폼 나게 부를 노래 한 자락을 연마한다. 깨달음이 터지고, 목청이 터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도 생각한다. 아르키메데스가 욕조를 바라보았듯이, 나는 샤워실 바닥부터 바라본다. 가로 80㎝, 세로 60㎝. 샤워기가 걸린 정면의 80㎝는 어찌 해보겠으나, 60㎝의 좁은 폭은 미천한 몸도 감당하기 어렵다. 샤워기를 건드려서 열탕과 냉탕을 넘나들며 비명을 지르고, 그 사이 샤워커튼은 몸에 은밀하게 달라붙는다. 마침 비누가 바닥에 떨어졌다. 에휴.

날마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일하는 신세이지만, 살고 있는 집은 20년째 그대로다. 시간에 추억이 얹혀 생겨난 익숙함과 게으름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처럼 변함없는 월세 탓이기도 하다. 괜한 욕망이 안개처럼 덮쳐 와서 바깥 사정을 알아볼 때마다 우리 부부는 다른 집의 변화무쌍한 월세에 눈만 동그래진 토끼가 되어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집토끼’였다.

그렇다고 마냥 수세적일 수는 없었다. 우리의 장기체류가 ‘아, 우리 집’이라는 자존감 넘치는 선택이길 바랬다. 그래서 2평 남짓 되는 베란다에 꽃을 심고, 인조 잔디도 깔고, 심지어 나무 데크도 들였다. 그곳을 맨발로 나다니면 ‘내 집’을 느꼈다. 하지만 이 좁은 샤워실 안에 서면, ‘내 집’은 가고 ‘남의 집’만 남았다.

늦바람 난 중년 부부는 결국 이사를 가려 한다. 괘씸한 일투성이다. 집을 비운다고 하니, 집주인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수도꼭지와 마루를 수리하고 페인트칠도 한단다. 덕분에 오랜 ‘요실금’ 때문에 바닥 신세를 졌던 샤워기는 이제 저렇게 당당하게 걸려 있고, 나는 그 당당한 물줄기를 받으며 ‘집토끼’의 처지를 억울해한다. 월세에 대한 고마움은 흘러간 목욕물처럼 잊은 지 오래다. 또 은행 창구에 앉아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저 ‘새집’은 기실 은행의 것임을 알게 된다. 집주인이 부동산 회사에서 은행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날마다 열두번 후회하고 열두번 마음을 다잡는다.

계산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우리가 한 가지 믿는 것이 있었다. 조금 불편하게 멀리 나가 살더라도, 앞뜰이 있는 집에서 ‘우리의 삶’을 살자. 뒷산을 든든한 배경으로 삼아, 뜰도 가꾸고 잔디도 심자. 그러니까 휴머니스트한 삶의 프로젝트가 되겠다.

그때 하필 유발 하라리의 책 <호모데우스>를 읽었다. “미래의 역사”라는 부제를 보고 내 미래가 더 궁금했다. 첫째 장을 시작하기도 전에, 하라리는 묻는다. 너는 왜 잔디밭을 원하냐? 아름다워서라고 하겠지. 내가 역사를 알려주마. 중세 후기 전에는 잔디 깔린 정원은 없었어. 아크로폴리스에 잔디가 있더냐. 저 옛날에는 땅이 귀했으니, 누가 멀쩡한 땅에 곡식을 안 키우고 잔디를 심었겠어?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이 잔디 심을 땅도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영국과 프랑스에서 좀 있다 하면 너나없이 잔디밭 사업을 일으킨 거지. “잔디 출입금지”라는 팻말, 참으로 상징적이지. 지금 혹시 잔디밭 딸린 집을 계획하고 있니? 그렇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 그런 것 하지 말라고 역사를 배우는 것 아니겠어.

그래서 나는 쏟아지는 샤워물에 고민한다. 앞뜰 잔디밭이라는 역사의 미아 같은 욕망을 포기할까, 아니면 “나, 역사책 읽는 사람”이라는 ‘가오’를 포기할까. 아니면 일본식 돌정원 ‘가레산스이’가 어떻겠냐는 하라리의 말을 들을까. 샤워물은 왜 이리 뜨거워!

샤워를 끝낸다. 묵힌 때는 덜었지만, 잡스러운 생각은 늘었다. 좁은 샤워실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돌렸다. 80㎝를 옆으로 하고, 60㎝를 보고 섰다. 샴푸와 비누 담는 통도 거기에 있다. 세상에! 이렇게 돌려서 본 샤워실은 넓었다. 움직임도 수월하고, 샤워꼭지(헤드)도 커튼도 간단히 제어할 수 있다. 샤워꼭지를 보고 샤워해야 한다는 편견이 없는 샤워실은 꽤 넓었다. 20년 만이다.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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