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9 18:26
수정 : 2019.12.30 09:33
존 페퍼 ㅣ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탄핵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하원 투표의 당파성이다. 두 개의 탄핵소추안에 공화당은 단 한명도 찬성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두명이 탄핵 반대표를 던졌는데 그중 한명은 이미 공화당으로 가겠다고 밝힌 사람이었다.
이 숫자들만 봐도 탄핵 투표가 해당 사안의 장단점이 아니라 순전히 의원들의 소속 정당에 기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탄핵 문제가 상원으로 가면 똑같은 당파적 분열이 예상된다. 상원의 공화당 지도부는 공정하게 증거를 살피겠다고 해놓고도 미리부터 탄핵안을 깎아내렸다. 그들은 새롭고 불리한 증거를 내놓을 수 있는 추가 증인을 불러내지 않고 탄핵 심판을 빨리 진행하기를 원한다. 민주당 상원의원들도 튀는 사람 한 두명을 빼고는 당 입장대로 탄핵에 찬성할 것이다.
트럼프는 분열적인 정치인이다. 버락 오바마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국이 빨간 주(공화당)와 파란 주(민주당)로 갈려 있다고 일갈하며 부상하던 때를 기억하는가. 오바마는 대통령이 돼서는 그가 비판했던 당파주의를 극복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2008~2009년 금융위기 때 대책을 마련했지만 하원에서 공화당의 찬성을 얻지 못했다. 당시 공화당의 존 베이너는 오바마의 정책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당파성이 더 커진 주요 원인은 두 정당의 성격 변화다. 공화당의 중도적 정치인들은 사임하거나 선거에서 더 우파적인 경쟁자에 패배해 당을 떠났다. 보수적 민주당 정치인들은 2010년 선거에서 크게 진 뒤 회복하지 못했다.
오바마가 미국의 분열을 치유하려 노력한 반면, 트럼프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왔다. 그는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악마화하고 ‘공산주의자’ 꼬리표를 붙였다. 그러나 트럼프가 엄밀히 말해 당파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공화당 사람들을 자주 비판해왔다. 그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만들고 북한·러시아처럼 미국의 주적으로 분류되는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우호적으로 대하는 등 공화당의 오래된 원칙들과 반대로 갔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당파성에 대한 개념을 뒤집었다. 그는 2012년 오바마를 찍었던 이들 가운데 600만~800만명의 표를 얻었다.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찍은 이들 8명 중 1명이 결국엔 트럼프를 찍었다. 트럼프는 정치를 소속 정당이 아닌 자신에 관한 것으로 바꿨고, 자신의 그림 속에서 공화당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유권자들까지 양극화된 건 아니다. 최근 몇년 사이 자신을 공화당(30%)이나 민주당(30%)이 아닌 무당파(40%)라고 밝힌 사람이 더 많아졌다. 또 유권자들은 분열적인 많은 이슈들에서 큰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대다수의 미국인이 더 엄격한 총기규제, 낙태 합법화, 국가 건강보험 시스템을 선호한다.
민주당은 트럼프 퇴출에 단합돼 있지만, 공화당이 어떻게든 오바마의 정책들을 막으려 했던 것과 똑같이 행동하지는 않는다. 민주당은 최근 트럼프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으로 대체하는 것을 도와줬고, 트럼프가 소중하게 여겨온 우주군사령부를 만드는 국방수권법도 지지했다. 입법을 막는 건 오히려 공화당이었다. 민주당이 지배하는 하원은 400개의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공화당이 지배하는 상원은 이를 무시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민주당더러 “아무것도 안 하는 당”이라고 한다.
정치가 극도로 당파적이고 양극화된 것이 트럼프 혼자 때문만은 아니다. 소셜미디어는 욕설과 과장을 키웠고, 주류 미디어의 진실 보도조차 음모론자들과 극단주의적 토크쇼 진행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또 기업과 부자들의 돈이 선거정치에서 압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되돌리는 것보다는 트럼프를 대통령직에서 내쫓는 게 더 쉬워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시대 이후에는 다수 미국인이 지지하는 사안들을 둘러싸고 정치적 합의를 이뤄내는 일에 전념할 대통령과 의회를 선출하는 것이 더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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