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03 17:56
수정 : 2020.01.04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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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럽파이브의 춤.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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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럽파이브의 춤.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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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 ㅣ <아이돌로지> 편집장
<엠비시(MBC) 가요대제전>에는 셀럽파이브가 출연했다. 여성 예능인들이 걸그룹 포맷을 참고해 결성한 그룹이다. 지금껏 음악방송에 출연한 적은 많았지만 이들이 다뤄지는 방식에는 걸그룹이라는 ‘유쾌한 놀이’에 응해주는 듯한 태도 역시 있었다. 어쨌든 개그우먼들이고, 가수와는 다른 ‘장르’라는 것이다. 반면 <가요대제전>에서 에이오에이(AOA)와 합동 무대를 하거나 ‘2년차 신인 걸그룹’으로서 인터뷰의 대상이 되는 모습은 셀럽파이브가 ‘가수들의 축제’에 어색함이 없다는 인식의 변화처럼 보인다. 에이오에이와 함께 웃음기 하나 없이 단호하고 강렬한 댄스 퍼포먼스를 보여준 무대에서 보이듯, 그럴 자격을 충분히 갖췄기에 가능했음은 물론이다.
또 하나의 풍경은 에스비에스(SBS)가 운영하는 유튜브 <문명특급>이다. 그동안 우리 대중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여온 코너다. 최근에는 이효리의 히트곡 ‘유 고 걸’을 ‘유교걸’로 패러디하는 영상을 제작하면서 작사가 김이나에게 상담을 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사실 ‘유교걸’은 오래전부터 팬들이 에스엔에스(SNS)에서 농담처럼 이야기하던 아이디어였다. 그것을 전통 미디어가 운영하는 뉴미디어 채널에서 음악계 전문가와 상의하며 구체화해 콘텐츠로 만들었다니 여러모로 상징적이라 하겠다. 비꼬려는 것인지 존중하고 싶은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김이나의 모습은 직업적 본분에 충실하려는 그와 뉴미디어 예능 <문명특급>이 묘하게 엇갈리는 장면이기도 했다.
예능이 대중음악과 적극적으로 얽히고, 뉴미디어와 전통 미디어가 뒤섞이고 있다. 유튜브와 에스엔에스가 강세를 보이면서 전통 미디어가 죽어간다는 예측은 오래전부터 나왔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계선 위에 수많은 회색지대가 생겨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말하자면 ‘확장된 예능’이다. 디지털 음원이 기본으로 자리잡으면서 ‘볼 파란 삼춘들’ 등 예능 방송에 사연을 보내는 시청자의 닉네임 같은 아티스트 이름이 수두룩하게 등장하기도 했다.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주위에서 입을 모아 “예능처럼 해야 잘된다”고 말하는 걸 들었을 것이다. 음악가들이 에스엔에스에 올리는 콘텐츠의 예능적 성격이 점점 강해지면서 ‘티브이 예능 출연으로 인지도를 높인다’는 방식도 과거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 티브이보다 훨씬 재미있고 팬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따로 있으니 말이다. 방탄소년단을 보라. 그리고 이렇게 경계를 넘나드는 도구로서 지금까지 가장 유망한 것은 역시 예능이다.
문제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예능 감각이 폭력적인 웃음에 너무 익숙한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유튜브 방송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때 대표적인 변명이 ‘웃기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웃길 수 있다면 타인에게 상처를 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이들을 옹호하는 시청자들도 같은 변명을 반복한다. 물론 유튜브 채널의 극단적인 사례들과 주류 예능 방송 사이 간극은 아직 상당하다. 그러나 앞서 말한 회색지대가 점점 넓어지는 이 시기, 음악이든 전통 미디어든 안심만 할 수는 없다. <엠비시 방송연예대상>에서 개그우먼 안영미가 ‘선한 영향력’을 호소한 것은 그래서 더 가슴에 남는다. 시상식에서 빛났던 여성 예능인 중 많은 이가 ‘상처 주지 않는 웃음’이란 철학을 꾸준히 피력해왔다는 점도. 폭력에 의존하는 예능은 창의력 부족이다. 다른 것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가 넉넉히 쌓이고 있다. 경계를 넘는 새로운 시도는 올해에도 얼마든지 등장할 것이다. 이들을 묶을 예능적 요소 속에서 새로운 감수성의 시대가 열리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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