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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7 19:35 수정 : 2020.01.08 14:06

선담은 ㅣ 사회정책팀 기자

“차량 우측에 뭐가 달렸는데, 제가 못 보던 거라…. 잠깐 내려서 통화할게요.”

새해 첫날 전화를 받은 남자는 ‘내 귀에 도청장치’가 아닌 ‘내 차에 도청장치’를 의심하며 차에서 내렸다. 아니, 사실 ‘그 차’는 남자의 차가 아니었다. 누구나 ‘공유’할 수 있다는 11인승 카니발, 혁신의 아이콘 ‘타다’였다.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한 달째 국회에서 표류하는 상황, 기자에게 할 말이 많다는 ‘타다 드라이버’는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했다.

“평일에는 거의 숨도 못 쉬어요. 방금 내린 손님이 차를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잖아요. 근데 정산 버튼 누르면 차 정리할 시간도 없이 딱 30초만 시간을 줘요. 콜 안 들어오게.” 1년 전, 남자는 웬만한 직장보다 수입이 좋다는 얘기에 혹해 ‘타다 드라이버’가 됐다. 벌이가 좋을 땐 한 달에 40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이 통장에 찍혔다. ‘인간적인’ 근무 여건에 돈도 많이 주는 타다는 한때 그에게 고마운 일자리였다.

불행이 시작된 건 지난해 7월1일이었다. 타다는 기존에 드라이버들에게 보장했던 60~90분의 유급 휴게시간을 폐지했다. 프리랜서 신분인 기사들에게 유급 휴게시간을 제공하는 건 이들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유급 휴식이 사라진 뒤 남자는 10시간 넘게 일하는 동안 밥도 먹을 수 없고, 화장실도 맘대로 못 가는 처지가 됐다. 콜이 떨어지지 않는 ‘휴식 중’ 모드를 선택하는 순간, 분 단위로 쉬는 시간이 측정돼 시급이 깎였기 때문이다. “1시간 동안 식당에 가서 7천원짜리 밥을 사 먹는다고 쳐요. 그럼 돈 벌러 나와서 1만7천원(시급 1만원) 손해를 보는 셈이죠.” 하지만 인공지능(AI)인지 뭔지 하는 기계는 이런 ‘사람의 마음’을 알 리 없다. 앱은 이따금 ‘장시간 운전 감지’라는 팝업창을 띄워 타다 드라이버에게 쉴 것을 권유하지만, 남자는 그런 ‘기계’가 얄밉기만 하다.

그래도 새해 첫날 남자는 운수가 좋은 편이었다. 어쨌든 차량을 배정받아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검찰이 ‘타다’ 운영사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뒤 일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게 기사들의 설명이다. 남자와의 통화는 5분, 10분 단위로 끊겼다. 그건 손님이 ‘타다’를 불렀다는 뜻이다.

“‘정부와 싸우느라 회사가 어렵다. 형편 나아지면 고생에 보답하겠다’고 이재웅 대표가 말했으면, 드라이버들이 차 가지고 (‘타다 금지법’ 만든) 국회로 쫓아갔을 거예요. 드라이버 인권이 무시되는데, 이 서비스가 얼마나 지속될 것 같아요?” 남자는 드라이버들이 모두 ‘타다’를 욕한다면서도 일말의 애정은 남아 있는 듯했다. 그는 외국에선 ‘우버’와 ‘그랩’ 같은 ‘공유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는데 한국만 시대에 역행하는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혀주는 새로운 서비스를 막아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혁신’을 위해서라도 드라이버의 노동권은 보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다가 무리하게 일을 시키면서 드라이버들이 계속 이탈하고 있어요. 기존 드라이버가 이탈하면 신규 기사들이 유입되는데, 아직 일이 서투니까 그만큼 서비스의 질도 낮아지죠. 내 몸이 지쳤는데, 손님한테 밝게 인사가 나오겠어요?” 타다는 남자를 ‘프리랜서’라고 하지만, 그는 자신이 엄연한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남자의 2020년은 조만간 국회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타다 금지법’이 통과될 경우 타다는 지금처럼 프리랜서 신분의 기사를 고용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는 ‘타다 드라이버’가 현재의 소득에 더해 4대 보험을 보장받는 일자리가 되길 바란다. 그게 어려우면 현재의 노동강도를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일자리를 찾아나서겠다는 계획이다. ‘타다 드라이버’의 새해 소원은 이뤄질까.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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