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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2 17:59 수정 : 2020.01.13 02:36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반가웠다. 2012년 우리 학교 학생 몇이 청원을 했다. ‘연애, 사랑, 애인’의 뜻풀이가 ‘남녀, 이성’으로 제한되어 성소수자의 인권을 무시하니 개정하라고 요구했는데 덜컥 받아들여졌다. 그 일은 2년 만에 뒤집혔다. 국립국어원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개신교도들의 항의를 냉큼 받아들여 ‘두 사람’을 ‘남녀’로 되돌렸다.

철 지난 얘기를 꺼내는 건 이 뜻풀이가 다시 바뀔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여서이다. 종이사전의 퇴보와 인터넷 사전의 등장은 새로운 사전 출판을 어렵게 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출판사마다 사전편찬실을 해체했다. 한국적 비극은 국가가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이 시쳇말로 사전 시장을 다 ‘먹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제 이 사전은 말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에게 ‘표준사전 가라사대’처럼 하나의 ‘경전’이 되었다.

사전의 개성은 뜻풀이에 있다. 뜻풀이로 사전은 경합한다.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표준국어대사전>)과 ‘상대방을 서로 애틋하게 사랑하여 사귐.’(<고려대한국어사전>)이 다퉈야 한다. 뜻풀이 속에 현실의 다양성을 최대한 포용하느냐 그러지 않느냐가 드러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자리에 ‘규범’이라는 법관을 앉혀 놓았다. 태생적으로 법(국가)은 몸이 무거우며 무미건조하고 무색이며 몸을 사린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에는 장난기 넘치게도 ‘연애’를 “둘만이 함께 있고 싶으며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을 갖지만 평소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 마음이 괴로운 상태”로 풀이한다. 우리는 얼음사전에 갇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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