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15 17:50
수정 : 2020.01.16 09:30
최현준 ㅣ 법조팀장
지난 14일, 예정된 90분을 넘겨 110분 동안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다소 아쉬웠다. 무엇보다 지난 반년 가까이 들끓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를 둘러싼 검찰 수사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답변이 그랬다.
문 대통령은 ‘조 전 장관 사퇴론이 한창일 때 장관 임명을 밀어붙였다. 그 배경을 말해달라’는 <불교방송> 박준상 기자의 질문에 “(조 전 장관의) 유무죄는 수사나 재판을 통해 밝혀질 일이지만, 결과와 무관하게 조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었던 고초만으로도 아주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전 장관 임명으로 인해 국민들 간에 많은 갈등과 분열이 생겼고 그 갈등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점에 대해 참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답변이 임명권자로서 인사 실책을 사과한 것인지, 그로 인한 국민 분열을 사과한 것인지 모호하다. 분명한 것은 문 대통령은 이날 조 전 장관의 비위 의혹에 대해서는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참모’ 조국이 겪은 ‘고초’를 공개적으로 마음 깊이 위로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조 전 장관 등 정부 인사를 겨냥한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검찰이) 어떤 사건은 선택적으로 열심히 수사하고 어떤 사건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면 수사 공정성에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며 에둘러 비판했다.
문 대통령 얘기대로, 아직 조 전 장관의 유무죄가 확정되지 않았고, 정치적 논란이 큰 사안인 만큼 신중하게 답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소탈하고 솔직한 문 대통령이 좀 더 적극적인 입장을 밝힐 것으로 기대했었다. ‘기자들이 조 전 장관 인사에 대한 대통령 책임을 명확하게 질문하지 않으니, 대통령이 대답하고 싶어도 못 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날 기자들은 ‘조 전 장관을 신뢰하느냐’고 묻는 등 대통령에게 이 대목을 여러 차례 질문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들으면서, 조 전 장관 기소 때나 검찰의 압수수색 때 청와대가 왜 자꾸 남 탓을 하는 방어적인 입장만 내놓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지난달 31일 검찰이 조 전 장관을 11가지 비리 혐의로 불구속 기소할 때 청와대가 내놓은 서면브리핑이 대표적이다. 당시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언론 보도를 보면 조국은 중죄인이었지만, 수사 결과를 보면 태산명동서일필”이라며 “수사 의도가 의심되고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가 흠집이 날 것”이라고 검찰과 언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가 보기에, 조 전 장관의 비위 혐의가 생각보다 약할 수 있지만, 조 전 장관이 청와대는 물론 대한민국 권력기관의 기강을 책임지는 민정수석이었고, 국가의 법무 담당 장관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답변은 달랐어야 한다. 검찰 수사나 언론 보도를 비판하기에 앞서, 조 전 장관의 행위가 적절했었는지에 대한 사과를 먼저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청와대는 이를 ‘태산이 흔들렸는데 쥐 한 마리가 나왔을 뿐’이라며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인권침해 요소가 있으니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해달라’고 한 국민청원을 청와대가 인권위에 송부한 것도 인권위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부적절한 ‘하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들 중 상당수는 조 전 장관 수사를 놓고 청와대와 검찰이 보이는 태도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렇게 털면 안 털릴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개혁에 저항하려는 검찰의 편파 수사다’라는 청와대의 항변은 맞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턴다고 그만큼 털릴 사람이 누가 있냐, 산 권력을 수사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는 검찰의 항변도 틀려 보이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조 전 장관 임명으로 인해 국민 갈등이 빚어졌다며 “송구하다”고 했지만, 이보다는 조 전 장관의 잘못은 무엇이었고, 검찰 수사는 무엇이 잘못인지, 본인의 실책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지 진솔하게 밝혔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분(조 전 장관)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그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이제는 끝냈으면 좋겠다”는 문 대통령의 호소도 더 빨리 실현될 수 있었을 것이다.
haojune@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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