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 ㅣ 춘천지방법원 판사
1994년 르완다에서 다수민족인 후투족이 소수민족인 투치족을 학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권을 잡은 후투족은 ‘투치족과 결혼하거나 투치족을 고용한 후투족은 민족 반역자’라는 내용의 후투 십계명을 발표했다. 후투 정치인들과 유명 인사들은 연설, 라디오 방송, 노래, 기고, 신문 기사 등을 통해 소수민족인 투치족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면서 말살을 선동했다. 르완다 언론은 그 발언을 자신들의 매체에 실어 르완다 전역에 퍼뜨렸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 선동이 대규모 학살을 가능하게 했다. 다수민족인 후투족이 투치족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회에서 소수민족인 투치족은 자신을 방어하고 차별을 멈춰달라는 하소연을 할 수 없었다. 하소연해도 그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투치족은 그렇게 입을 잃었다. 후투족 사람들은 점점 투치족 사람들을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사람이 아니니 괴롭힐 수 있었다. 괴롭히다 보니 죽일 수도 있었다.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위와 같은 후투족 정치인과 언론의 혐오 선동 행위 자체를 제노사이드(국제법상 대량학살범죄)의 한 형태로 인정했다. 다만, 모든 형태의 혐오 선동을 제노사이드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제노사이드로 인정된 르완다의 혐오 선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었다. ①사회의 공적 인물이 공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발화로서 혐오를 선동하였다. ②혐오 선동이 주요 언론매체를 통해 전달되면서 강한 전파력을 갖게 되었다.
차별은 모든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보는 인식이 흐려질 때 발생한다. 사람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고,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으로 나누며, 안전한 사람과 위험한 사람으로 나눈다. 분류는 배제를 부른다. 비정상인 사람들을 배제하고, 못난 사람들을 배제하고, 위험한 사람들을 배제한다. 배제된 사람들에게는 쉽게 혐오가 붙는다. 혐오의 선동이 한 사회 내에서 공적으로 확인되고 인정받으면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한 탄압은 가혹해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비극은 숱하게 발생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인권재판소는 ‘관용과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에 대한 존중은 민주적 다원적 사회의 기초를 구성한다. 민주 사회에서 불관용에 근거한 증오를 퍼뜨리거나 선동하거나 정당화하는 모든 형태의 표현에 대한 제재나 금지는 고려될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인종, 국적, 성별 등 차별에 기반을 둔 혐오선동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본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 번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뜻밖에도 ‘중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함께 전파하고 있다. 뜬금없이 한국 내 중국인 밀집 지역을 집중 취재하며 마치 이곳만 특별히 비위생적인 것처럼 보도한다.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해서 일시적인 입국 금지 조처가 필요할 경우 그 조처는 입국자의 국적을 불문하고 출발(경유)지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인데 “중국인” 입국 금지를 주장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중국인들이 무료 치료를 받기 위해 대거 입국한다는 근거 없는 얘기도 나온다. 모든 중국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일 리 없는데, 바이러스 유입 및 확산은 “중국인” 배제를 통해 막을 수 있다는 것처럼 말들이 돌아다닌다.
문제는 이런 내용이 일부 정치인이나 일부 언론을 통해 우리 사회에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적인 인물이 공적 발화를 통해서 또는 언론이 보도를 통해서 차별적인 내용을 언급할 경우 그 차별은 이 사회에서 힘을 갖게 된다. 힘을 얻은 차별과 배제는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재한 중국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이러한 차별과 배제가 전염병 관리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재한 중국인 차별과 배제가 그들로 하여금 출입국 이력이나 감염 증상 신고를 주춤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전염병 관리에 차질을 일으킬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한다. 하지만 전염병 관리 차원이 아니더라도 소수자, 약자에 대한 차별과 그에 기반을 둔 혐오 선동은 역사를 통해 위험이 입증되어 국제인권규범상 금지되어 있다.
최근 전세기로 입국한 우한 지역 거주 한국인들에 대해서도 우려와 갈등이 있었지만, 아산·진천 시민들은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메시지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사회안전망이다.” 이 메시지가 재한 중국인들에게도 적용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