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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성장이 아니라 생존이 문제다

등록 2020-02-04 18:18수정 2020-02-05 02:36

나는 어렸을 때부터 1월에는 꼭 스키를 탔다. 고향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도, 현재 거주하는 오슬로도 북위 60도에 위치하고 있어 1월에는 보통 강설량이 풍부했다. 그러나 올해는 아직 한번도 스키를 타지 못했다. 난생처음 겪는 일이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스키를 탈 만한 눈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멀리 산에 가거나, 아예 비행기를 타고 북부 노르웨이로 가지 않는 한 말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오슬로의 기온은 영상 6도, 가을과 같은 비가 눈 대신 줄줄 내리고 있다. 평년 1월 기온은 영하 2~3도인데, 올해는 기온이 이 정도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주위 사람들은 “겨울이 이번에 취소됐다”고 쓴웃음 섞인 농담을 주고받곤 한다. 줄줄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전 지구를 덮치려는 커다란 재앙의 도래를, 대부분이 감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이제 가설이 아니고 매일 몸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이다. 사실 노르웨이보다 이 현실 속에서 한국이야말로 훨씬 더 많은 피해를 보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더 많은 피해를 볼 것이다. 2018년 8월2일처럼 서울의 밤사이 최저 기온이 30.3도 정도 되어 시민들이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초열대야 현상만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계속 오르는 해수면은, 2100년쯤 되면 군산이나 목포가 침수 위협에 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풍은 과거보다 더 파괴적일 가능성이 크고 가뭄은 더 잦아질 것이고 쌀 생산량은 5~10% 정도로 감소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인구가 과밀하고 경작 가능한 면적이 제한된데다가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는 스칸디나비아에 비해 기후변화에 훨씬 더 취약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스칸디나비아보다 한국에서 기후위기 대책의 문제가 여론의 공간에서 훨씬 덜 의제화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기후 이변의 문제야말로 ‘백년대계’가 절실히 필요한데 말이다.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두 부분은 한국 사회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첫째, 인류의 장기적 생존 자체가 위협에 놓일 이 시점에 여전히 ‘성장 동력’을 논하는 보수 언론들은 과연 어느 행성에서 사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앞으로 이 지구에서는 성장이 아니고 생존이 가장 시급한 문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온난화가 가장 심한 타격을 줄 생산 부문의 하나는 아마도 농업일 것이다. 이미 지금도 일부 연구에 의하면 세계 농업이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해마다 치러야 하는 추가 비용은 140억달러 정도 된다. 앞으로 20~30년 동안 이상기온과 한발, 농지 침수 등에 따른 세계적 식량 가격의 비정상적 폭등이 예상되며, 대부분의 연구자가 2050년 이전까지 기후 이변이 세계적으로 평균 5~25% 정도의 실질 식량 가격의 인상을 가져올 것으로 내다본다. 그러나 구체적인 상황 전개에 따라 일부 품목의 가격 폭등 폭은 훨씬 더 클 수도 있다.

지금 성장 동력 운운하기보다는, 이런 비상 상황 속에서 한국의 식량 자급률이 48.9%, 곡물 자급률이 23.4%라는 것부터 마땅히 걱정해야 한다. 한국의 보수 언론들은 걸핏하면 ‘선진국’을 들먹이지만,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미국의 식량 자급률은 124%이며 프랑스는 111%, 독일은 80%, 이탈리아는 63%다. 참고로 북한의 식량 자급률도 90% 정도로 추정된다. 사실 산업화한 나라들 가운데에서는 한국이야말로 온난화가 가져올 식량 문제에 가장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편이다. 젊은이들의 귀농 환경 조성 그리고 도시농업 등의 국가적 장려야말로 현재로서는 가장 시급한 의제가 아닐까?

둘째, 지구온난화는 일부 지역을 더 이상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곳으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지금도 방글라데시는 해마다 국가 면적의 약 18%가 홍수로 침수된다. 온난화 속도와 해수면 상승 속도에 따라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존재하지만, 2100년에 이르면 방글라데시 면적의 대부분이 영구적으로 침수될 확률도 있다. 방글라데시의 총인구는 지금 1억6천만명이다. 방글라데시뿐인가? 역시 온난화 시나리오마다 수치가 다르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난민의 총수는 최악의 경우 2060년에 약 14억명, 2100년에는 약 20억명이 될 수 있다. 이 재앙을 인류 전체가 만들어낸 이상, 이 재앙이 발생시킬 이재민에 대한 책임 역시 인류 전체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도 세계의 일부분인 이상 결코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현재 방글라데시 방직업에 대한 최대의 투자국이다. 방글라데시의 저임금 노동 착취로 큰돈을 벌고 있는 입장에서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할 이재민의 일부에 대해서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아마도 세계 여론일 것이다.

사실 자연재해로 인한 이민의 증가는 재앙이 아니라 ‘기회’이기도 하다. 어차피 2028년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될 대한민국에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되면 ‘일손’부터가 대단히 많이 필요할 것이다. 2067년에 이르면 한국 총인구의 46.5%가 65살 이상의 노인일 것이다. ‘성장’? 이런 상황에서 현재 생활 수준이라도 유지하고 현재 인프라라도 가동시키려면 매해 상당수 이민자의 유입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식량 위기 대책의 문제처럼, 기후 난민 폭증에 따른 대량 이민의 시대를 준비하는 것은 대한민국에 장기적 생존의 문제다.

그러나 이민자 대량 유입의 시대에 대비하자면 현재 이민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현재 같으면 주로 여성인 결혼 이민자들은 사실상 동화시키고, 남성이 비교적 많은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은 단기 체류만 허용하고 결국 내보내는 것이 이민 정책의 뼈대다. 그러나 대량 이민의 시대에는 여성 이민자들에게 김치 담그기를 가르치고 명절에는 한복을 입혀 시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리게 하는 행사들이 상징하는 동화 정책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민자들이 한국의 공공 공간에서는 한국어를 쓰더라도 그들의 소사회 안에서는 각각 그 민족어를 계속 쓰고 고유 풍속들을 지키는,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 사회를 이해하고 용인하는 새로운 세대를 우리는 이제부터 길러내야 한다. 세계사 과목은 선택이고, 그 내용 중에서는 예컨대 많은 이민자를 발생시킬 동남아시아에 대한 부분이 극히 적은 오늘과 같은 교육체계를 가진 사회로서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닐 것이다.

인류 전체를 덮칠 재앙을 한국이라고 해서 결코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 지금부터 ‘백년대계’를 세워 계획적으로 대비하기 시작한다면 현재보다 다양하고 관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박노자 ㅣ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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