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6일 엠비시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어린 딸을 혈액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엄마가 가상현실 기술로 만들어낸 딸의 모습을 만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센서가 달린 장갑을 끼고 헤드셋을 쓴 엄마는 가상현실에 등장한 딸 나연이의 얼굴을 만지고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생일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노래도 불러주었다. 나연이가 가장 좋아했다던 미역국을 먹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가상 스튜디오에서 딸을 만나는 엄마를 보던 제작진은 눈물을 흘렸고, 나연이 아빠, 오빠, 언니, 막내 여동생, 그리고 방송을 본 시청자들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가상현실에 등장한 아이가 나연이와 다르다는 사실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모두에게 분명해 보였다. 그 아이가 진짜 나연이라고 오해할 소지는 별로 없었다. 일곱살 막내는 “얼굴이 좀 다르잖아”라고 했고, 헤드셋을 벗고 현실로 돌아온 엄마는 “사실은 우리 나연이랑은 많이 다른 느낌이니까. 근데 이렇게 멀리 가면 또 나연이 같더라고요”라고 했다. 가상현실 속 나연이가 움직일 때 “얼핏얼핏 보이는 모습”에서 나연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 정도였다. 나연이를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을 엄마가 혼동할 만큼 나연이를 충실히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가상현실 제작 과정을 보면 이런 한계는 당연한 것이다. 사진과 영상으로 남아 있는 나연이의 흔적은 가상현실 속 3차원 모델을 만들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나연이 또래의 아이 다섯명이 800개 문장씩 말을 하는 데이터를 나연이 음성 재현에 사용했다. 나연이와 비슷하게 생긴 아이의 얼굴과 몸을 3차원으로 스캔해서 가상현실 속 나연이의 기본 형태로 삼았다. 또 연기자가 나연이 사진과 영상에 나오는 표정과 동작을 따라 하도록 하고 그것을 촬영해서 가상현실 속 움직임을 만들었다. 연기자는 나연이가 미역국을 먹는 동작도 따라 했다. 한 사람을 디지털로 재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외모, 표정, 동작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고 해서 가상현실 속 나연이를 생전의 나연이로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가상현실 제작에 반대했다는 열다섯살 첫째는 기술로 재현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제작진이 나연이에 대한 기억을 묻자 오빠가 꼽은 첫번째 기억은 “착했다”였다. 착한 나연이를 어떻게 다시 데려올 수 있겠는가. “항상 웃어요” “머리가 짧았어요” 같은 시각적 기억은 기술로 되살려볼 수 있겠지만, “저랑 제일 친했어요” “아무도 안 반한 사람이 없습니다”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오빠의 기억은 나연이와 함께 보낸 시간과 그러면서 맺은 관계에 대한 것이었고, 이는 기술의 영역 너머에 있다.
가상현실 속 엄마와 나연이의 만남은 가짜였을까? 엄마가 솔직하게 말했듯이, 헤드셋을 쓴 엄마가 본 아이는 나연이가 아니었다. “한번만 만져보고 싶어”라고 간절히 말할 때 사실 엄마는 초록색 배경 앞에서 허공에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비싸고 복잡한 기술을 동원해서 가상현실에 나연이와 비슷한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휴대폰에 저장된 진짜 나연이 사진과 영상을 꺼내 보는 것보다 나은 점이 있느냐는 의문도 생긴다.
하지만 진짜로 착각할 만한 가짜를 만들었느냐 하는 것이 가상현실 기술의 궁극적 잣대는 아닐 것이다. 가상현실 속 나연이는 진짜가 아니었지만, 엄마의 얼굴과 헤드셋 사이 틈으로 흘러내린 눈물은 진짜였다. 나연이를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아차릴 만큼 가상현실은 아직 성기지만, 어떻게라도 딸을 만나겠다는 엄마의 간절함은 가상현실 속에서 밀도 높은 진짜 감정을 유발했다. 엄마는 그 눈물의 기억으로 또 나연이를 잊지 않고 살 것이다.
우리는 헤드셋을 쓰고 들어간 가상현실 속에서도 울고 웃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울음과 웃음의 효과는 가상이 아닌 현실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가상현실을 만들고 제공하는 이들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가상현실에서 누가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이유로 울고 웃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누구의 도움을 받아 누가 지켜보는 가운데 들어갔다 나오는지에 따라 가상현실은 위로와 치유가 될 수도 있고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엄마는 가상현실로 들어가기에 앞서 “좋은 걸 경험했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했다. 부디 그랬기를 바란다.
전치형 ㅣ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