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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내가 한국차를 선택한 이유

등록 2006-01-04 18:41수정 2006-01-04 19:11

훙칭보 중국 월간 <당대> 편집 부국장
훙칭보 중국 월간 <당대> 편집 부국장
세계의창
나는 베이징의 1세대 오너드라이버다. 1990년대 중반 내가 중국과 프랑스 합작인 시트로앵을 살 때까지만 해도 승용차는 교통수단이라기보다 신분의 상징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차 사는 행위를 ‘과시 소비’라 불렀다. 나름대로 심사숙고를 거쳤던 나로선 매우 억울했다. 나는 차량 구매가 ‘걷기를 대신하는 도구의 장만’이자 ‘새로운 생활방식의 구매’라고 여겼다. 실제로 차량 구매는 개인의 활동 범위와 교제의 폭, 여가 생활 등에 질적인 차이를 가져왔다.

내가 시트로앵을 살 때 중국에서 히트상품은 독일의 폴크스바겐이었다. 폴크스바겐의 중국 모델 ‘산타나’와 ‘제다’는 중국 시장의 90%를 휩쓸었다. 자동차에 문외한이던 내가 시트로앵을 사는 외로운 선택을 한 건 국외파 친구들의 조언 덕분이었다. 그들은 폴크스바겐 것이 70~80년대의 낡은 모델인 반면, 시트로앵의 ‘푸캉’은 90년대 프랑스의 최신 모델이란 사실을 내게 알려줬다.

이 때부터 나는 자동차에 대해 눈을 떴다. 이후 중국의 자동차시장은 비약했다. 이 즈음 중국인의 자동차 구매에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자동차에 대한 무지’라는 웃지못할 조사 결과가 나왔다. 차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각종 매체와 판매상의 ‘차종 선택 도우미’에 의존한다. 이 도우미들은 품질은 따지지 않고 유명 브랜드만 권한다. 폴크스바겐의 할아버지 모델에서 손자 모델까지 중국에서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른 건 이 때문이다.

독일에 이어 중국 소비자를 울린 건 일본이다. 닛산은 ‘티나’를 중국에 내놓으며 ‘최신형 엔진’이라고 광고했으나 변속기는 낡은 모델임이 드러났다. 닛산은 이어 일본에서 이미 단종된 ‘블루버드’에 단거리 무선전화 따위를 설치한 뒤 ‘이(e) 세대 자동차’라고 크게 선전했다. 그래서 중국에선 “일본 자동차업계는 1등 기술로 유럽과 미국 시장을 뚫고, 2등 기술로 자국 시장을 만족시키며, 3등 기술로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고, 4등 기술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속설이 만연해 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뷰익은 유럽과 한국의 대우자동차를 조합한 모델을 중국에 들고 와 ‘뷰익’ 상표를 붙여 팔았다. 중국 소비자들은 “싼 값에 뷰익을 샀다”며 싱글벙글했다. 되레 뷰익 본사가 이런 상황이 오래 가면 브랜드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이 정체불명의 모델을 ‘뷰익’에서 ‘시보레’로 한 단계 낮췄다.

21세기 들어 중국의 자동차시장은 더욱 폭발했다. 1세대 오너드라이버들은 앞다퉈 차를 바꿨다. 나도 2004년 차를 바꿨다. 그동안 나는 자동차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를 쌓았다. 나는 독일 차가 품질이 좋다는 건 알지만, 중국 소비자에겐 한물 간 차량이 어울린다고 보는 그들의 오만은 싫다. 미국 차가 편안하다는 걸 알지만 미국 상표 안에 유럽과 한국의 부품이 뒤섞인 걸 사고 싶진 않다. 일본 차가 날렵하고 패션감각이 뛰어나다는 걸 알지만 중국 소비자는 영원히 원본 일제를 살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시트로앵에서 한국 승용차로 바꾼 건 이 때문이다. 뒤늦게 중국 시장에 뛰어든 때문이겠지만 한국 승용차는 ‘올드보이’가 아니라 한국에서 지금 판매되는 바로 그 모델을 중국에 내놓고 있다.

중국 소비자들은 아직도 각국의 옛 모델을 국제가격보다 50% 이상 비싼 값에 소비한다. 내가 여기서 중국 자동차시장의 짧은 역사를 돌아본 건 이런 불합리함이 싫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에게 참고가 되길 희망한다.

훙칭보/중국 월간 <당대>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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