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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노들섬, 도시의 여백을 지키는 방법 / 노은주·임형남

등록 2020-02-25 18:40수정 2020-02-26 02:07

노은주·임형남 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잠실은 원래 섬이었고, 노들섬은 섬이 아니었다. 그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들섬은 노량진 건너 한강 북쪽, 지금의 이촌동과 붙은 땅이었다. 그러니까 강기슭이었을 테고 그곳에는 임금에게 물을 바치던 우물이 있었다 하여 납천정리(納泉井里)라 부른 마을이 있었다.

이곳에 1917년 일본인이 철제 인도교를 놓고 모래 언덕을 만들어 백사장에 솟아오른 섬 같은 모습이 되자, 한강의 한가운데 생긴 섬이라 하여 중지도(中之島)라 불렀다. 그리고 한참 뒤 건너편 노들강변에서 이름을 따 ‘노들섬’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니 이 땅의 운명도 참 복잡하다.

“한강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라는 속담이 있다.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뜻일 텐데, 한강 백사장은 지금의 노들섬 주변에서 북단으로 펼쳐진 무척 너른 곳이었다. 1956년 대통령 후보였던 신익희씨가 수십만명을 모아놓고 사자후를 토하던 곳이었고 서울 사람들이 파라솔을 펴놓고 수영복을 입고 더위를 식히던 여가 공간이었다.

그 많던 백사장의 모래는 어디로 갔을까? 중지도로 부를 때는 그곳에 전차역이 있어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었고, 용산 쪽에서 걸어서 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부터 강 주변이 정리되며 자동차 전용 강변도로가 생길 때 혹은 이촌동을 개발할 때 이곳 모래를 퍼다 써서 백사장은 그만, 강물이 지나는 물길이 돼버렸다. 그래서 그 섬은 드넓은 모래사장 위에 솟은 언덕이 아니라 강 중간에 어정쩡하게 남겨진 진짜 섬이 돼버린 것이다.

2006년 어느 날, 서울시는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만들겠다는 사업계획을 공표했다. 물 위에 뜬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멋진 그림을 펼쳐서 보여주었지만 과다한 개발비용과 용도의 적합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외국 건축가를 초빙한 두차례의 ‘한강예술섬’ 설계공모는 실현되지 못했고, 한동안 노들섬은 그냥 사람들이 텃밭을 가꾸는 한적한 도시의 여백으로 남게 되었다. 나는 속으로 안도하면서 강물이 모래를 실어 와 노들섬이 자연스럽게 오래전 헤어진 가족과 상봉하듯 육지와 다시 만나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러나 결국 많은 논의 끝에 456석 규모의 대중음악 공연장을 비롯해서 음악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공간이 들어섰다. 애초의 과도한 계획에 너무 놀라서인지 그 정도면 안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은 참 냉소적인 표현 같지만, 도무지 여백을 참지 못하는 우리의 조급함에 비해 지금의 시설은 애초의 어마어마한 규모나 화려함 대신 오히려 여러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몫이다. 여가를 즐기러 한강 백사장을 찾고 쉼터로 삼았던 예전처럼, 우리의 상상력과 애정으로 가꾸며 본의 아니게 섬이 되어버린 노들섬을 위로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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