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박찬수 칼럼] 김사부와 최대집

등록 2020-02-26 15:57수정 2020-02-27 02:39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임시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위기경보 심각단계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최대집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임시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위기경보 심각단계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최대집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엊그제 막을 내린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2>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라 환자가 죽는 건 그럴 수 있어. 하지만 환자의 죽음을 놓고 ‘정치질’하는 건 안 되지.” 수술 도중 사망한 환자를 빌미로 의료재단이 돌담병원을 폐쇄하려 드는 걸 주인공인 김사부(한석규)가 질타하면서 한 말이다. 이 말이 순간적으로 가슴에 꽂힌 건, 요즘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너무 많은 이들이 ‘정치’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대한의사협회(의협·회장 최대집)가 지난 2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정부 성명을 발표했다. 의사협회는 ‘정부의 총체적 방역 실패’를 비판하며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경질, 정부의 ‘비선 전문가’ 자문그룹 교체, 중국 전역 입국금지,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특정 종교단체에 돌리지 말 것 등을 촉구했다. 정부의 방역 실패를 꾸짖고, 어떤 환자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지 ‘비난의 대상’은 아니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국민 공포를 덜어주는 게 정치의 영역이라면,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전문가들의 책임이다. 그런데 의사협회 성명을 보면, 주어만 정당으로 바꾸면 곧바로 ‘정치적 주장’이 될 법한 얘기가 적지 않다. 감염병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책임자인 장관을 바꾸라는 건 야당도 좀처럼 꺼내지 않는 얘긴데, 의사협회는 손쉽게 ‘경질’을 요구한다.

더 놀라운 건 ‘비선 전문가 그룹 교체’를 주장한 것이다. 도대체 ‘비선’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비선’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 자체가 정치적이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의 최서원(최순실)을 떠올리려는 의도일 것이다. 치명적인 신종 전염병 재난을 다룬 영화 <컨테이젼>을 보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를 중심으로 평소 교류해온 여러 대학·연구기관들이 협력해 백신을 개발하고 사태를 안정시키려 노력한다. 의사협회가 말하는 ‘비선’은 이런 전국의 대학 또는 연구소의 감염병 전문가들인가. 의협은 지금이라도 전문가 자문을 의협으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했다. 그렇다면 대한의사협회처럼 의사들의 공식 이익단체 활동과 거리를 둔 전문가는 모두 ‘비선’이 되는 건가. 정치인들도 이런 식으로 뚜렷한 근거 없이 ‘비선’을 거론하며 정치공세를 펴진 않는다. 공포의 확산을 막으려면 ‘근거 없는 말’의 제어가 시급한데, 지금 의사협회 스스로 모호한 언어로 불신과 혼란을 부추기는 셈이다.

그러면서 의협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내놓은 만성질환 환자들의 ‘병원 전화상담·처방’ 지침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 환자들의 병원 감염을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추진하는 조처임에도 의협은 “정부 지침을 전면 거부한다. 회원님들의 이탈 없는 동참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전화상담·처방이 ‘졸속 대책’이란 게 명분이지만, 원격진료 자체에 반대해온 의사협회의 기존 방침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의사협회의 뜬금없는 장관 사퇴 요구가 그들이 주장하는 ‘총체적 방역 실패’보다 ‘원격진료 허용’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의사협회 행보가 최대집 회장의 보수적인 정치 성향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여전히 논란이 많은 ‘중국 입국 금지론’은 그렇다 쳐도, 마스크 수급과 지역전파에 관한 지적은 정부가 좀더 일찍 귀 기울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 믿음을 얻기 위한 노력은 정부뿐 아니라 의사협회도 해야 한다.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특정 집단에 돌리지 말라’는 의협 성명 내용이 “특정 교단을 이야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미뤄선 안 된다”는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발언과 똑같은 건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양쪽 모두 `신천지'를 거론하면 ‘문재인 정부의 대중국 저자세와 이로 인한 방역 실패'라는 프레임이 흔들릴까 걱정하는 건 아닌가.

드라마 <낭만닥터…>를 보면 세상에 ‘정치’를 전혀 하지 않는 의사는 없다. 완벽한 것 같은 김사부도 자신의 목표를 위해선 치밀한 계획을 세워 사람들을 활용한다. 단지 사람을 살려야 하는 상황에선 그 ‘정치’를 멈출 뿐이다.

지금 전국 방역의 최전선에선 수많은 의료진이 목숨을 걸고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한 대구·경북에선 의사협회 지침과 달리 지역의사회 차원에서 병·의원과 주민들에게 원격진료를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이 대한민국 의사·간호사들에 대한 국민 신뢰를 만든다. 최대집 회장이 돌아봐야 할 지점이다.

논설위원실장
pc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