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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감염병 시대의 돌봄노동 / 양난주

등록 2020-03-02 18:54수정 2020-03-03 09:27

양난주 ㅣ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3월로 접어들었지만 모두의 일상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와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학교마저 개학과 개강을 늦췄고 어린이집, 유치원도 문을 닫았으며 정부는 경로당, 사회복지관,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 등 14종 사회복지시설의 휴관을 권고했다. 기업들도 재택근무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대한감염학회, 대한예방의학회 등 11개 학회가 구성한 ‘범학계 코로나19 대책위원회’는 국민 모두가 사회적 활동과 접촉 수준을 적극 낮춰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민이 방역의 주체가 되어 가능한 한 모임과 외출을 자제하고 사람들과 접촉을 최소화하는 데 공공만이 아니라 민간기업도 동참해야 하며 정부가 이를 위해 각계 주요 단체들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달라 당부했다. 지역사회 확산 단계로 접어든 코로나19 전파 속도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에 머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집에 머물고 있지만 혼자서는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과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노인들에게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10여년 전에 장애인활동지원제도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되어 장애인에게는 활동지원사, 노인에게는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찾아가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식사를 준비하고, 밥을 떠먹여드리고, 씻겨드리고, 침대에서 일으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병원을 같이 가는 등 집으로 방문하여 이루어지는 서비스의 범위는 사람의 생활 그 자체다. 이렇게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장애인활동지원사는 현재 약 8만여명, 요양보호사는 약 32만명이다. 전 국민이 이동과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도 결코 멈출 수 없는 이들의 활동은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필수 공공서비스’다.

지난달 27일 서울 은평구에서 확진자로 추가된 넷 중 세 사람은 한 가족으로 노부부와 며느리였다. 다른 한 명은 할아버지에게 방문요양서비스를 하던 요양보호사였다. 여기서 누가 누구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동과 접촉을 배제할 수 없는 직무 탓에 요양보호사는 바이러스 확산의 위험요인이면서 감염 피해에 취약한 대상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이 바이러스 위험이 높은 시기에 건강이 취약한 사람들을 방문하여 일하는 요양보호사와 활동지원사의 위생과 안전은 서비스를 받는 노인, 장애인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수십만명에 이르는 방문형 돌봄노동자의 위생과 안전 관리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혹시라도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에서 ‘위생관리 철저’라는 공문만 내려보낸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해본다. 아마도 요양보호사와 활동지원사에게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경제적 여력과 책임감을 동시에 갖춘 재가서비스기관은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라는 공적 제도에 의해 ‘필수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지만 장애인활동지원사, 요양보호사들의 고용과 임금은 공적 보장과는 거리가 멀다. 40만 돌봄노동자는 대부분 민간기관에 시급제로 고용되어 일하고 있으며 시간당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다. 모두가 장애인활동지원기관, 재가장기요양기관과 고용계약을 맺고 있지만 이용자가 서비스를 줄이면 바로 노동시간이 줄기에 고용이 안정적인 것도 아니고 매달 급여가 일정하게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기에 일을 중단하고 집에 머물면 소득도 사라지는 셈이다. 건강 위협에 처한 취약층의 안전을 생계보장 자체도 위태로운 노동에 맡기는 현 상황이 과연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의문이다.

현재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매일 수백명 단위로 증가하고 있지만 언젠가 바이러스 확산 추세는 수그러들 것이다. 움츠러들었던 우리의 일상도 다시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이 침잠의 시기에 우리 사회에서 기본적인 생명과 안전 그리고 돌봄노동자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수명은 늘고 노인은 증가하지만 가구 규모는 지속적으로 줄기에 돌봄의 사회적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다. 돌봄노동을 건강과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필수 공공서비스로 인정하고 직무와 고용지위, 임금, 자격기준에 대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개선이 필요하다. 건강의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 공동체는 사람과 돌봄의 가치를 중심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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