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06 20:00
수정 : 2005.02.06 20:00
자연 속에 직선은 없다. 있다 해도 그것은 곡선의 일부이거나 잠시적인 것이다. 지구라는 행성 위에 오직 인간만이 직선을 만들어내고 또 좋아한다. 크게 잘못된 일이다. 자연에 직선이 없는 이유는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다. 개체는 전체를 닮기 마련이다. 만약 지구가 평평한 판 모양으로 생겼다면 그 안은 온통 직선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래야 안정감이 있으니까. 그러나 지구는 둥글다. 큰 동그라미 안에 작은 동그라미가 있고 그 안에 또 동그라미가 있다. 이것들이 깨지고 터지고 눌리고 서로 붙고 늘어나 다양한 곡선을 만들어낸다. 지구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곡선 가운데 하나가 인간이다. 균형 잡힌 몸매의 유려한 곡선은 시대를 초월하여 예술가들의 찬미의 대상이었다. 서로 아껴주고 감싸는 영혼의 아름다움 역시 곡선이다. 사랑을 뜻하는 하트 모양을 보더라도 인간은 곡선 안에서 휴식을 느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지막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걷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평온해진다. 곡선이 주는 치유의 효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인간들은 직선을, 그것도 대량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산을 깎고 숲을 파헤쳐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만들고 논밭을 밀어 그 위에 콘크리트 직각기둥을 무수히 꽂아 놓았다.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싹둑 자르고 갯벌을 메워 항만과 부두를 만들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어느덧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직선으로 도배질되었다. 그에 따라 직선을 닮은 사람의 마음은 서로를 찌르고 밀쳐내며 오로지 키재기에만 몰두한다. 지고는 못배기는 직선의 마음은 도시의 확대로 이어지고 확대된 도시들을 직선으로 연결하면서 자연의 파괴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천성산 관통도로 공사와 새만금 매립공사는 지금 이 순간 지구 곳곳에서 무수히 벌어지고 있는 ‘직선의 반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 ‘반란’이라고 했다. 둥그런 행성 위에 직선을 그렇게 마구잡이로 쌓고 만드는 행위는 자연의 질서에 대한 반란이다. 그러므로 목숨을 걸고 천성의 곡선을 지키고자 하는 지율을 매도하는 ‘반란자’들은 들을지어다. “이 행성은 더 이상의 직선을 수용할 능력이 없다. 수많은 과학자와 예언가들의 지적을 애써 외면하지 말라. 이 상태로 직선화를 계속하게 되면 머지않은 미래에 돌이킬 수 없는 자연의 대반격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곡선회복 운동’을 벌여야 한다. 도시의 구석구석에 곡선을 되살리고 너와 나 사이에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슬쩍 틀어놓고 그 사이에 꽃도 심고 나무도 심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설령 이쪽에서 화가 났다 하더라도 저쪽으로 가는 사이에 어느덧 풀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직선적인 명령에 시달리는 조직체일수록 주위에 곡선이 많아야 한다. 일의 능률이 훨씬 더 올라갈 것이다. 지난 시절에 만들어 놓은 구부러진 도로를 무조건 직선으로 고칠 게 아니라 그 곡선 속에 담겨 있는 민중의 애환과 정서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생명의 문화이고 인간 행복의 척도다. 지금까지 너무도 많은 우리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생명들이 무지한 반란자들의 직선화 야욕 아래 허무하게 사라져 갔다. 직선은 그것을 만드는 자들에게 쾌감과 이익을 가져다줄지 모르겠으나 곡선에 몸 붙여 살던 뭇 생명들에게는 재앙일 뿐이다. 직선 속에서 획일적인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들이 아직도 귀족들의 작위가 존경받고 있는 영국에 가서 좁아터진 골목길과 울퉁불퉁한 도로, 검소한 집안 살림 따위를 보고 콧방귀를 뀌는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를 리드하는 첨단 영국의 저력이 그 안에 감추어진 곡선에서 나온다는 것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짓이다. 이제 우리는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곡선정신과 조선의 천재화가 단원 김홍도의 해학적 곡선을 어떻게 이 시대의 도시와 마을에 살려낼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황대권 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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