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혁신은커녕 / 김우재

등록 2020-03-09 18:28수정 2020-03-10 02:38

김우재 ㅣ 초파리 유전학자

코로나19로 퍼진 공포는 마스크 대란으로 번졌다. 대통령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 늘어선 그 긴 줄을 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민심이 흉흉하다. 대만의 디지털 특임장관 오드리 탕은 민관협력을 통해 만든 앱 하나로 마스크 대란을 잠재웠다. 2016년 나는 그를 ‘해커 장관’으로 소개하며 박근혜 정부에 경고했다. 환갑이 지난 노인들로 채운 장관 후보자들 틈에서 혁신 따위를 기대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현 정부 청와대 참모진은 평균 53.4세, 올드맨이라고 불린다. 그 중년의 아저씨들이 불혹의 나이를 넘긴 보좌관조차 어린애 취급을 한다고 들었다. 청와대의 혁신은 이미 물 건너갔다.

문재인 청와대의 정체성은 인문학 정부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운동권 및 각종 시민단체 출신의 그 참모들이 지닌 인문학 정신이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혁신을 말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넘어 이질적인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을 수용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행어를 들고나왔을 때부터 불안했다. 책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의 한 장을 쓰면서, 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와 ‘창조경제’를 바꿔 놓아도 아무런 차이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촛불혁명이 곧 혁신을 담보하는 건 아니다. 적폐 청산으로 혁신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혁신은 현장의 단단한 경험을 지닌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와 경제산업 분야의 수장들은, 진영논리와 상관없이 해당 분야의 현장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임명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처음 내정한 인물은 박기영 교수다. 황우석 사태로 국민은 물론 과학기술인 모두가 받은 상처에 대해 눈감았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부는 창조과학자 박성진 포스텍 교수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다. 이런 인사 참사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과학기술계 복심인 문미옥 전 과학기술보좌관이 책임져야 했지만, 그는 곧 차관으로 임명됐다. 청와대는 과학기술 인사조차 대부분 캠프 출신으로 국한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동호 교수는 황당하게도 가짜학회 참석 경력으로 낙마했고, 스타트업과는 아무런 연결고리도 찾을 수 없는 박영선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됐다.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사기라고까지 말하는 로봇 소피아와 쇼를 했던 인연 외엔 재벌 해체를 주장해온 저격수의 경험밖에 없는 인물이다. 재벌의 반대말이 중소기업이라는 게 인문학 정부의 결론인 셈이다. 중기부가 유니콘 20곳을 내년까지 육성한다고 한다. 어이없는 정책이다. 차라리 규제나 제대로 혁신하면 다행일 텐데, 그것조차 별 희망이 없어 보인다.

화려하게 내세웠던 4차 산업혁명의 성과는 아무것도 없다. 초대 4차위 위원장을 지낸 장병규 대표는 청와대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며, 청와대 참모들은 쓴소리를 불편해한다고 회고했다. 심지어 문 정부는 친기업이나 반기업이 아니라 무기업이라고 독설을 날렸다. 정부와는 거리가 먼 이재웅 쏘카 대표가 기획재정부의 혁신성장 민간본부장 활동까지 했지만, 복지부동으로 일관하는 한국 관료주의를 넘을 수 없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으로 특별 영입해 화제가 됐던 염한웅 포스텍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말한다. 과학기술과의 단절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와 민주당 박홍근 의원의 주도로, ‘타다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타다 이후 택시는 오히려 매출이 증가했고, 법원에서 무죄가 나왔음에도, 정부와 국회는 표를 위해 기업 하나의 존립을 위협한다. 이재웅 대표는 혁신을 금지하는 정부와 국회는 죽었다고 말했다. 4차위에서 활동했던 이나리 대표는 위원회 활동의 경험을 통해 느낀 실망감과 무기력을 공유하며, 문재인 정부의 무기업 정책을 재확인시켜주었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은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났다. 과학기술에 몽매한 인문학 정부엔 혁신이 존재할 수 없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