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욱 ㅣ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코로나19’의 습격은 21세기의 세계화된 리스크의 하나인 지구적 전염병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던졌다. 전염병은 멀리는 인류 생존을 위한 오랜 싸움, 좀 더 가까이는 현대 의료와 공중보건의 역사에 관련되지만, 현 상황의 가장 특수한 시대적 성격은 세계화 시대의 감염병, 감염병의 세계화라는 문제로 집약된다.
20세기의 세계적 전염병으로 1918년의 ‘스페인 독감,’ 1957년의 ‘아시아 독감,’ 1968년의 ‘홍콩 독감’ 등이 떠오르지만, 2000년대에 인류는 몇 년 간격으로 큰 전염병을 겪고 있다. 2003년의 ‘사스’, 2009년의 ‘신종플루’, 2015년의 ‘메르스’, 2019년에 개시된 ‘코로나19’ 등이다. 신종플루는 감염자 수가 163만명을 넘었고 메르스는 치사율이 40%에 이르렀다. 전염병의 세계화는 심각한 문제가 됐다.
세계화는 경제, 군사, 생태 등 여러 면에서 ‘리스크의 세계화’를 초래했다. 금융위기, 테러리즘, 환경오염 등은 영향의 범위가 전 세계적이며 일국 수준에서 이를 차단하기 어렵다. 감염병도 마찬가지다. 마셜 매클루언이 말한 인류의 ‘지구촌’은 인간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의 지구촌으로 쉽게 돌변할 수 있다. 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새로운 대응법을 인류 사회는 찾아내야 한다.
질병의 세계화에 대응하는 두 가지 대조되는 방식이 보인다. 하나는 ‘회피’ 유형이다. 예를 들어 정부에 의한 은폐·축소 시도다. 피해 현황을 숨기거나, 사태의 심각성을 폄하하거나, 검사를 소극적으로 하여 감염자 수를 억제하는 등이다. 미국의 트럼프나 일본의 아베는 이런 식으로 문제가 부상하는 것을 누르고 있다.
26일 오후 세종시 조치원읍 보건소 내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선별진료소까지 차를 몰고 온 시민은 차에 탄 채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연합뉴스
‘국경 통제’ 같은 단순논리도 복잡한 현실을 회피하는 반응이다. 입국 금지는 질병의 유입을 막을 확실한 방책 같지만 현실에서 그 효과는 회의적이다. 일찌감치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중국 관련자 단속에 몰입해온 이탈리아는 현재 사망자가 수백명에 이르는 최악의 상황인 반면, 국경 통제의 효력을 의심하며 차분히 상황을 관리해온 독일은 사망자가 1명에 그쳐 있다.
한국의 대응 방식은 회피 유형에 대조되는 ‘공세’ 유형을 뚜렷이 보여준다. 전염병의 침입을 당한 사회가 정부와 민간의 인력, 조직, 기술을 총동원하여 바이러스를 집요하게 추적하고, 발견하고, 관리하는 장면을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바이러스 유입 초반에 비교적 잘 대응했으나 ‘신천지의 습격’이라는 복병을 만난 이후로 큰 위험에 빠졌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3월7일 기준 한국의 확진자 수는 6767명으로 중국의 8만813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고, 인구 대비 확진자 수는 중국을 넘는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한국 사회가 이런 위기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정면승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외신이 주목하듯이 한국은 정부, 지방자치단체, 민간의 협력으로 방대한 규모의 검사를 수행해 감염자를 조기 발견하고 의료적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 3월5~6일 검사자 수는 한국이 15만8456명, 이탈리아는 3만2362명, 영국은 2만388명, 일본은 6777명, 미국은 1583명이다. 인구 100만명당 검사자 수로 계산하면 한국이 3106명, 이탈리아 539명, 영국 304명, 일본 53명, 미국 5명이다.
이처럼 압도적 수의 유증상자를 보건의료체계에 포섭함으로써 한국은 치사율을 아주 낮은 수준으로 억제하고 있다. 국가별 치사율은 미국 7.0%, 중국과 이탈리아 3.8%, 이란 3.0%, 일본 1.7%, 한국은 0.7%다. 많은 나라가 증상이 심해진 뒤에야 감염자를 포착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선제적으로 감염자를 찾아내어 치료하고 있는 것이다.
머지않아 코로나19는 세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 북미 등도 상황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이들 나라들은 같은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공격적으로 바이러스에 맞선 한국 사례의 성공과 실패를 참조할 것이다. 한국의 검사 시스템, 정부 대응전략, 민관협력 체제는 이미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많은 난관과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대규모 감염자를 수용할 인프라를 확충해야 하고, 위축된 경제의 활기를 회복해야 하며, 미래의 또 다른 복병에 대비해야 하고, 상황의 장기화에 적응할 방책을 찾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지금 인류 보편의 숙제다. 한국 사회는 21세기 전염병에 맞서 인류가 벌이는 분투의 최전선에서 길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