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영 ㅣ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재난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인사들이 많아졌다. 정부가 추경을 통해 취약계층에게 상품권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일부 정치인들은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서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영업자 비중이 유독 높은 한국에서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긴급구호 처방으로 고려될 만하다. 하지만 자본이 직접적인 생산 과정 외부에서 이윤율을 증대시키는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실물경제를 회복하는 것만으로 삶의 질을 높이기란 어려워 보인다. 사람들 대부분은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도 여전히 위태로운 삶을 견뎌내야 한다. ‘착한’ 임대료 운동에서 기업이 내놓은 거액의 현금까지 금융자본주의는 재난 시기의 은총으로 등장했지만, 그 감춰진 민낯을 보려면 각자 거울 앞에 제 몰골을 비추면 될 일이다.
그런데 지구가 무너지면 이 위태로운 삶들마저 멈출 것이다. 내가 재난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는 더 많은 (대부분 질 낮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를 해치는 일을 안 해도 될 자유, 지구를 살리는 일을 선택할 자유를 모두가 갖기 위해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기후변화와 직접 관련이 있다는 일련의 분석은 인간 활동이 지구에 지울 수 없는 정도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인류세(Anthropocene)에 대한 위기감을 일깨운다. 기온이 계속 상승하면서 저온에서만 생존 가능했던 병원균의 적응력이 높아지고 있다. 수시로 엄습하는 자연재해로 야생동물 거주지가 파괴되면서 인간과 야생동물의 접촉 또한 빈번해졌다.
전염병은 물론 최근의 현상은 아니다. <농경의 배신>에서 제임스 스콧은 전염병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경은 국가를 탄생시키고 인류문화의 꽃을 피운 찬란한 유산이 아니라, 정착을 강제함으로써 생태적으로 풍요롭고 다채로웠던 환경을 단순하게 길들인 주범으로 지목된다. 사람, 작물, 가축이 기생생물 및 병원체와 함께 전례 없이 집중화된 결과 인수공통전염병이 출현했다. 마스크에서 시설까지 코로나19 뉴스를 도배한 ‘격리’도 오랜 연원을 갖는다. 기원전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병원체에 대한 지식을 갖추진 못했어도 식별 가능한 발병자를 제한 구역에 가두고 그의 접시나 옷까지 회피했다. 20세기 초 스페인독감 때 지목된 “과밀한 사회적 장소들”의 목록(박람회, 군대, 학교, 감옥, 빈민가, 종교 순례지)은 현재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다고 역사의 반복으로 간단히 매듭짓기엔 위해가 너무 크다. 세계 대도시들이 같은 생활권으로 묶이다 보니 팬데믹 위험도, 이에 따른 손실도 헤아릴 수가 없다. 전염병은 지역사회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창궐한다.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는 오늘날의 정신질환을 ‘사회-소통적 전염병’이라 불렀다. “네트워크에 접속해 끊임없이 증가하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 덩어리를 계속 수신·처리”하는 게 생존 방식이 된 것이다. 확진자는 격리 중에도 안전하지 않다. 불성실하다고 흠집이라도 잡히면 누리꾼에게 온갖 모욕을 당하고, ‘착한’ 확진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기본소득은 일상이 재난이 되고 민주가 안전으로 축소된 세계에 실존의 빈곤을 완화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그 개념이 일국의 복지로 축소되고 재원이 세금에 국한되면서 포퓰리즘 논쟁만 반복되는 게 안타깝다. 앙드레 고르는 1970년대 유럽의 실업과 자동화 추세를 동시에 살피면서 “노동할 수 없는 채 살아가야 하는 상황과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 사이에 발이 묶인 현실에 주목했다. 자동화와 정보화가 노동과 생활을 화해시키는 수단이 될 수는 없을까? 고르가 살았던 반세기 전 유럽보다 지금의 세계에 더 어울리는 질문이다. 만인의 지식과 소통이 디지털화되면서 재화와 서비스 생산 외부에서 가치를 추출하는 시대가 되었다. 국제기구가 전 지구적 재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제 역할을 정비하고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독점한 데이터 ‘공유부’를 제대로 분배하기만 해도 지구 기본소득의 재원은 차곡차곡 쌓일 수 있다. ‘집콕’을 하는 요즘도 우리는 모니터 앞에서 인공지능을 더 똑똑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지 않는가. 텔레비전을 보니 앱이나 게임 광고가 부쩍 늘었다. 국내 굴지의 아이티 기업들이 글로벌 기본소득 재원을 조성하는 실험을 선도한다면 이야말로 멋진 한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