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진 ㅣ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대부분의 국가는 코로나19에 맞서기 위해 재정을 쏟아부을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도 추경을 준비하고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추경에 앞서 재정이 어떤 자세로 코로나19 정국을 맞이해야 하는지 짚어보자.
첫째,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은 대체로 외생적인 것이다. 우리가 겪었던 경제위기를 돌이켜보면 내부의 문제에서 기인한 부분들이 꽤 있었다. 그 위기를 벗어나려면 힘든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그런 내생적 위기가 아니다.
둘째, 코로나19 사태는 외부성이라는 현상을 동반한다. 외부성은 내 행동이 시장을 거치지 않고 남에게 직접 영향을 줄 때 발생한다. 우리가 마스크를 쓰는 행위는 좋은 외부성의 일종이다. 혹시 나에게 있을 바이러스가 남에게 전염되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좋은 외부성이 있는 경우, 선한 행위를 늘리기 위한 보조금 지급이 필요하다. 정부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쓸 수 있도록 시중보다 싼 값에 마스크를 팔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셋째, 이번 충격은 수요와 공급에 동시에 영향을 주고 있다. 통상적인 경제위기는 수요 위축이 주요 원인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응 정책도 총수요를 늘리는 데 집중된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공급 측면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확진자가 나온 기업들이 문을 닫고, 접촉 노동자들이 자가격리를 하고, 외국에서 수입하는 원부자재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졌다.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 공급분야의 부진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의 세부담과 규제 완화 같은 조치들이 시행되어야 한다.
넷째, 추경은 코로나19 관련 분야에 우선적으로 집중되어야 한다. 재정은 납세자의 혈세를 쓰는 것이다. 필요한 곳에 집중해서 쓰고 반드시 효과를 내야 한다. 보균자 추적, 검진, 치료에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관련자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처음 한두달은 봉사, 신념, 헌신으로 유지가 가능하지만, 지금처럼 기간이 늘어나는 경우에는 경제적 유인체계도 반드시 검토되어야 한다. 사전적인 재정지원이 힘들다면 사후적 조세지원이라도 제공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지원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
다섯째,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지원 방식은 다양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소비가 감소하여 매출이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이 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있다. 노동자들에게는 즉각적인 재정지원이 도움이 된다. 재난기본소득이든 사회보험료 감면이든 재정지원은 삶의 고단함을 덜어줄 수 있다. 하지만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는 낮은 이자율에 충분한 양의 대출이 좀 더 유용한 지원책일 수 있다. 정부는 이자의 일부를 지원하고 공적 보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다만, 현재의 대출 기준을 적용하면 금융지원의 사각지대가 많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완화된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사각지대의 자영업자를 구할 수 없다.
여섯째, 조세보다는 재정이 낫다. 조세를 통한 지원은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조세의 특성상 납부할 세금이 있는 사람들이 수혜자가 된다. 납부할 세액이 없는 사람들은 지원 혜택을 볼 수가 없다. 중장기적으로는 세제 혜택도 좋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단기전에서는 재정지원이 빠르고 좋다.
일곱째,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의 방역체계는 견고하고 시민의식은 뛰어나서 아직 조심스럽지만 어쨌든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내수도 조만간 회복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이제 시작이다. 우리 경제구조는 해외 의존도가 높아 내수만 회복된다고 모든 것이 정상화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경제가 정상화되어야 우리 경제도 정상화가 된다. 이번 한번만 넘기면 뒤가 없을 것처럼 재정을 쏟아부어서는 안 된다. 세계경제가 둔화되면 이와 같은 위기 상황이 다시 닥칠 수 있다.
확진자, 격리자, 그들을 돌보는 의료 종사자들 모두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중 가장 뛰어나고 헌신적인 의료진과 그들을 뒷받침하는 건전한 재정과 건강보험이 있어 든든하다. 각자의 코로나 전선에서 힘겹게 싸움을 벌이면서 묵묵히 일상을 이어나가는 국민 모두에게 잘 싸우고 일상에서 다시 만나자는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