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람 l 작가
그는 강남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 청춘을 바쳤다. 액자 파는 일을 했다. 원목 액자, 합판 액자, 아크릴 액자, 패널 액자, 금속 액자…. 액자에 관해서라면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했다. 가족사진을 넣어둘 액자를 찾는 일반 소비자와 대량으로 주문할 인테리어 업자를 눈썰미로 가려낼 수도 있었다. 업자들은 물건을 정하기 전에 가격을 먼저 묻고 흥정하는 법이 없었으니까. 마치 천만 종류나 되는 상품의 하나인 것처럼, 전시된 액자의 한 모서리에는 여덟 자리 일련번호가 적힌 작은 견출지가 붙어 있었다. 일련번호의 첫 네 자리는 아무런 정보값이 없었고, 나머지 네 자리 중 홀수번 숫자들은 상품 원가를, 짝수번 숫자들은 소매최저단가를 담고 있었다. 뒤 네 자리가 ‘1240’인 액자는 원가가 14만원이고, 일반 소비자와는 20만원 이하로 흥정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가게 주인은 목재상이었다. 구입한 목재를 지방의 작은 공장에 발주해서 액자를 제작했다. 때로는 미대생들을 고용해서 액자 안에 들어갈 모네나 세잔의 그림을 베껴 그리게 했다. 그림을 원하는 손님들은 액자값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팔리는 것은 액자였지만 손님들은 벽에 걸 그림을 구입하는 셈이었다. 가게의 전성기는 주인이 유럽에 거래처를 튼 2000년대 초반이었다. 유럽에서 수입한 저가 목재로 만든 액자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목재 단가는 국내산보다 훨씬 저렴했지만 그래도 유럽산이라 손님들은 두 배의 값에도 지갑을 열었다. 가게의 수익은 크게 늘었다. 유럽산 목재로 만든 액자를 파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그는 솔직하게 영업했다. 고민하는 손님 옆에 서서 견출지에 적힌 일련번호를 빠르게 훑어보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쪽은 국내산 목재로 만든 액자고, 저쪽은 유럽산 목재로 만든 액자예요. 유럽산이 비싸긴 하지만 국내산도 품질은 뒤지지 않습니다. 저라면 국내산을 사겠는데요.” 그러면 손님들은 그의 진심 어린 조언에 감사와 신뢰를 표한 뒤, 결국엔 유럽산 목재 액자를 사갔다. 한때 그는 화가를 꿈꿨고 나중에는 액자를 팔았지만,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들은 가치 있게 여겨지는 액자 속에 담겨야 했던 것이다.
지하상가는 휴일이 없었다. 모두가 쉬는 연말은 오히려 상가의 대목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화훼 상가를 장식한 트리 조명이 소모하는 엄청난 전력량과 마땅한 선물을 찾아다니는 손님들의 체온으로 상가 전체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난방을 전혀 하지 않아도 여름보다 훨씬 더웠다. 겨울마다 반팔을 입고도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이달 초 강남 고속터미널 지하상가가 임시 휴업했을 때, 그는 나에게 상가 전체가 한 주를 통째로 쉬는 것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모두가 그런 시절을 지나고 있다.
다시 개장한 강남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는 여전히 적막이 감돈다. 코로나 감염 확진자의 방문으로 휴업했던 인근의 고급 백화점도 손님이 줄었지만, 바로 그 옆에 붙어 있다는 이유로 지하상가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 시기에 손님들이 사는 액자에는 어떤 추억이 담길까? 이 시기에 선물하는 꽃다발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지하철에서 내린 행인들은 발걸음을 재촉해 황량한 상가 통로를 빠져나가고, 거래가 성사되는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상인들의 표정은 읽히지 않는다. 모두가 힘들 때 유난히 더 힘든 이들은 일상의 작은 기쁨을 팔아왔던 상인들이다.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 사라지면 꽃과 액자도 쓸모를 잃는다.
생각이 사치스럽게 느껴지고 말이 힘에 부치는 때이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의 임시휴무를 알리는 안내판은 늘 붙어 있던 ‘연중무휴’ 안내판 아래에 아직도 붙어 있다. 안내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쓰였다. “힘내라! 대한민국!” 참 뻔한 말이다. 그런데 오늘 그와 함께 나눌 말로 그보다 적당한 것이 떠오르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