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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코로나19 ‘격리’와 마주하기 / 황필규

등록 2020-03-19 18:25수정 2020-03-20 09:28

황필규 ㅣ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메르스 때다. 감염병을 이해하기 위해 법을 살피고 문헌을 뒤졌다. 그리고 영화를 봤다. <컨테이젼>의 영화 카피가 눈에 들어왔다. 영어 카피인 ‘공포처럼 빨리 퍼지는 것은 없다’(Nothing spreads like fear)는 한국어 포스터에서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로 둔갑해 있었다. 감염병이 가지는 복잡한 성격과 영향을 애써 외면한 채 단순하게 접근하려는 정부, 사회,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메르스로 인해 2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격리를 경험했고 약 1천명이 병원에 격리됐다. 한명씩 격리되기 시작하는데 요건과 절차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고 격리자들은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됐다. 과연 그러한 격리가 정당하였는지, 제대로 된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는지, 격리 후 적절한 처우, 충분한 보상 등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었다. 격리자에 대한 낙인과 편견에 관한 사회적인 평가, 반성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왔다.

감염병의 확산을 막아야 할 절박한 순간에 격리에 대한 문제 제기는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격리는 강제구금이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도 사람을 강제구금함에 있어 그 요건과 절차, 처우를 명확히 하지 못한다면 법치주의는 붕괴되고, 유사한 인권침해는 반복된다. 격리자들은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도 감염 또는 감염 가능성, 혹은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자기 목소리를 전혀 낼 수 없는 사람들이다. 감염병이 만들어내는 특수한, 인권적으로 가장 취약한 집단이다.

3월18일 0시 현재 검사자 수가 거의 30만명에 이르고 확진자 수도 1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추이라면 시설 격리는 수만명에 이를 것이고 자가격리 등을 포함하면 수십만명이 구금 혹은 사실상 구금 상태에 놓였거나 놓이게 된다.

너무 당황해서일까. 법에 근거한 강제격리인지, 당사자의 동의하에 이루어져야 하는 자발적 보호인지조차도 제대로 구별되지 않은 채 ‘격리’로 지칭되는 경우들이 있다. 정부에서도 언론에서도 마찬가지다. 우한 교민들이 입국 후 국내 시설에 머물렀던 것은 강제적인 시설 격리인가 아니면 자발적 보호인가. 강제조치였다면 과연 법적 근거는 명확한가. 우한에 있던 미국인들이 일정 기간 미국 내 시설에 머문 것은 자발적 보호가 명백했음에도 왜 대다수의 언론은 이를 ‘공군기지 격리’라는 식으로 보도했을까.

지자체들이 얘기하는 ‘예방적’ 격리에 법적 근거는 있는 것인지, 강제성을 띨 수는 있는 것인지. 법적 격리는 공공 당국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인데 사설 병원 등의 입원환자 격리는 법적 정당성이 있는 것인지. 감염병 대응이 중요하지 그런 것이 현재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묻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강제로 구금된 것인지 스스로 보호받고 있는 것인지의 구별이 의미 없다고 할 사람은 없다.

법상 격리에도 적법 절차가 잘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감염병예방법을 보면 격리의 기준이 확진 외 ‘인체 침입 의심’, ‘접촉하여 전파될 우려’, ‘감염되었다고 의심’ 등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는데 이러한 요건들을 일관되게 설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격리의 요건은 반드시 명확해야 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격리의 절차도 증표의 제시, 격리의 통지, 조사거부자의 인신구제청구권 등이 전부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구두진술권, 이의제기권 등이 보장되어야 하고 격리의 내용과 불가피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설득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격리자의 처우도 일부 생계 지원이나 입원치료 지원 등에 대한 규정만 있다. 격리자가 그 구금으로 인해 받을 생계, 가정, 학교, 직장, 사회생활상의 모든 영향을 사전에 충분히 점검하고 각각에 대하여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건강의 보호, 경제적, 사회적 혼란의 최소화와 인권 보호 간의 적절한 균형은 이루어져야 한다.’(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그러나 ‘인간의 존엄과 권리는 이러한 (코로나19 대응) 노력의 가장 앞에 그리고 그 중심에 있어야 하는 것이지 나중에 생각할 문제인 것은 아니다.’(유엔 인권최고대표) 격리는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 적어도 수만명이 더 구금될 것이다. 최소한의 것들이 갖춰지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에게 회복되기 어려운 정신적 혹은 경제적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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