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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평생 고통받기를 바란다 / 권김현영

등록 2020-03-24 11:07수정 2020-03-25 09:33

권김현영 ㅣ 여성학 연구자

텔레그램 박사방 가해자 이름이 공개되었다. 역대 최대의 사람들이 신상공개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했다. 수사기관에서는 신상공개 여부를 두고 회의를 한다고 했다. 나는 평소 신상공개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사건의 경우는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해자의 이름이 공개되어야 하는 이유가 수사기관의 입을 통해 공표되기를 바랐다. 잔인하고 중대한 범죄이며 재범 가능성이 높고 피의자가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했으니 강력범죄 처벌 특례법에 의거하여 신상이 공개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공식 절차가 이뤄지기도 전에 한 방송사가 단독 보도를 감행하여 가해자의 실명이 알려졌다. 신상공개 청원에 참여한 사람들이 원한 것은 이런 방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성범죄자 신상공개 제도가 도입된 이유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들의 경우 다른 범죄에 비해 재범률이 높고 아동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94년 미국 뉴저지주에 거주하던 7살의 메건은 성추행 후 살해당했다. 범인은 동종 전과가 있었다. 아동성범죄자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의견이 모아졌고, 피해 아동의 이름을 따서 ‘메건법’이 만들어졌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예방적 차원에서의 알권리가 필요하고, 범죄자에게는 억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실제로 신상공개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신상공개를 통해 알게 된 이름을 가지고 지역사회와 경찰이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관건이었다.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의 가해자 이름이 공개된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이 사건을 제대로 된 이름으로 부르는 것부터가 정의의 시작이다. 페미니즘을 비롯한 사회운동이 만들어낸 진정한 변화의 순간에는 항상 정명 운동, 즉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행동주의가 있었다.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건 매우 중요한 정치적 행위다. 범죄자가 스스로 지어 부른 이름은 ‘박사’였다. 타인을 지배하며 권능감에 취해 있었을 자아도취적인 이름 대신에 평생 동안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만 하는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는 건 그 자체로 중요한 사회적 메시지가 될 것이다.

반드시 ‘공개’되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수사는 이제 시작이라고 한다. 수많은 범죄자가 길고 긴 리스트에 올라 있다. 앞으로 디지털 성폭력, 특히 유포를 빌미로 협박하거나 실제로 유포한 모든 가해자의 신상이 ‘공익적’ 목적으로 공개되기를 원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개인 신상정보를 손에 넣고 협박을 일삼았다. 그와 공범자들이 텔레그램에서 범행을 일으킨 이유는 다른 곳에 비해 보안이 철저하고 삭제와 수정, 유포가 매우 용이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유인해 원하는 정보를 손에 넣기만 하면 피해자를 조종하는 것이 가능했고 자신은 안전하다고 믿었다. 타인의 신상을 공개한 이는 신상정보가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 가장 정확하게 알 것이므로 신상공개는 다른 어떤 경우보다도 효과적일 것이다. 신상정보를 처분할 권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가해자들의 잘못된 믿음을 반드시 공권력의 이름으로 깨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칼럼을 쓰기 위해 그동안 정신건강을 위해 거리를 두었던, 읽지 않고 모아둔 관련 자료들을 모두 읽었다. 앞으로 꽤 오랫동안 불면의 밤을 보낼 것 같다. 그리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지독한 점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렇게 피해자가 많은 사건인데도 다른 범죄 현장과는 달리 가해자가 구속되고 처벌받는 자리 어디에서도 피해 당사자가 등장해 울고 화내는 모습은 찍히지 않았다. 앞으로도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기억이 되고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이라는 것으로부터 구제되어온 것이다. 잊혀지고 있는 것은 버림을 받아온 것이다.” 존 버거의 이 문장을 다시 떠올리며, 피해자의 안녕을 바라 마지않는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피해자들이 아니라 가해자들이 고통받기를 원한다. 처벌은 처벌대로 받되, 씻기지 않는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매일 밤을 보내기를 원한다. 저주도 분노도 아니다. 그들이 자신이 한 짓이 무엇인지를 뒤늦게라도 깨닫고 다시 인간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드디어 공감이 가능해지고 그 고통에 원인을 제공한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에 바늘 끝으로 심장을 찔리는 기분을 느끼기를 바란다. 그래, 나는 당신들이 평생 동안 고통받기를 바란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피해 상담과 수사법률지원, 심리치료 연계지원 등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전화: (02)735-8994 누리집: https://www.women1366.kr/stop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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