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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남과 북, 방역이라는 고리 / 김광길

등록 2020-03-25 18:32수정 2020-03-26 02:50

김광길 ㅣ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2014년과 2015년에 에볼라가 전세계에 유행이었다. 당시 운영 중이던 개성공단을 위해 열감지기 등을 남한에서 북한 검역당국에 지원해주었다. 북한은 이를 이용해 의심자의 개성공단 출입을 제한했지만 격리하거나 금지하지는 않았다. 당시 중국에서 북한으로 입국하는 경우 북한은 입국자를 무조건 30일간 격리하는 엄격한 조처를 내렸다. 그래도 중국 기업이 진출해 있던 북한 나선경제무역지대의 운영은 계속되었다. 중국에서 화물차에 원재료를 싣고서 중국의 출국지점인 취안허 세관을 통과해 북한의 입국지점인 원정리 세관까지 가서 화물차를 주차하고 운전기사가 중국으로 돌아오면 나선경제무역지대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나와 그 화물차를 운전하여 나선경제무역지대로 들어가는 식으로 운영되었다.

개성공단에서도 구제역이 유행하면 돼지고기 반입이 중단되고, 조류독감이 유행하면 가금류의 반입이 중단된다. 이번에 코로나19로 개성공단에 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운영이 중단되는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북한도 전염병 예방법이 있다. 우리 법만큼 자세하지는 않지만 전염병의 조사, 차단, 격리와 예방접종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2014년과 2015년에 연달아 전염병 예방법을 개정했다. 주된 내용은 이번 코로나19와 같이 다른 나라에서 시작되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에 대한 방역을 위해 다른 나라와의 입출국을 엄격히 제한하는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 법률은 지금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지만 2010년 이전에는 ‘전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라고 했다. 개성공단에서 북한과 공동작업을 통해 전염병 예방법규를 제정하고자 노력하면서 공동방역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우리의 ‘전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기초로 우리가 개성공단 관리위원회의 법규인 ‘식품위생 및 전염병 예방준칙’을 제정했는데 이를 기초로 북한은 2010년에 ‘식료품 위생 및 전염병 예방 세칙 협의안’을 전달해 협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코로나19 방역에 협조할 의향을 친서를 통해 전달했고 지난 22일 북한은 이 사실을 알렸다. 이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감염병 확산에 남북이 공동 대응할 필요가 있음을 밝혔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3월4일 친서를 통해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코로나19로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방역을 고리로 남·북·미가 대화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2016년 이후의 엄격한 대북제재로 무역이 거의 중단된 북한이 이번 사태로 그나마 열려 있던 좁은 문조차 닫았다. 북한은 무상의료체계를 자랑하지만 심각한 경제난으로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결핵 등 각종 전염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의료장비와 약품 등도 부족하다. 다른 나라에서 전염병이 도는 경우 국경을 봉쇄하는 방안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나 국경봉쇄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완전한 국경봉쇄는 북한이라도 어렵다. 무증상자에 의한 전파 가능성이 큰 이 바이러스의 특성상 국경봉쇄로 전염을 막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현재와 같이 무역과 교류가 사실상 금지된 상황이 조금이라도 변화된다면 북한의 방역은 매우 절박한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북한의 열악한 의료 현실과 장기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어 북한 주민들의 면역력이 약한 점을 고려하면 보건과 감염병 예방체계를 확립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국제사회와의 교류와 협력은 감염병 확산으로 큰 희생을 초래할 수 있다. 보건 협력은 인도주의 사업으로 대북제재의 예외에 해당된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지원이 대북제재의 예외라는 점은 미국 정부도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감염병 차단을 위한 방역은 진단키트 공급 정도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의료시설의 확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아가 현대적 의료시설 건물을 짓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의료기기와 이를 운영할 인력이 필요하다. 지난 1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 참석해 현대적 의료보건시설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올해 10월까지 병원을 완공하라는 지시를 했다. 이 병원에 필요한 기기와 이를 운영할 인력이 부족할 수 있다. 한국은 북한과의 교류에 앞서 적극적인 보건의료 협력에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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