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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코로나는 예외 상태가 아니다 / 김선기

등록 2020-04-01 18:38수정 2020-04-02 02:36

김선기 ㅣ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매일 연기 소식을 듣는 나날이다. 교육부는 4월9일부터 학년에 따라 차례로 우선 온라인 개학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의 4차 개학 연기다. 대부분 대학은 3월16일 개강 이후 2주간만 임시로 하겠다고 했던 비대면 수업 기한을 조금씩 더 연장하면서, 대면 강의 연기를 주기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2주간만 물리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자는 거리의 플래카드는 2월 말 이후로 기한 갱신을 반복하고 있다. 시민들은 갈팡질팡하며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이를테면 강연이나 발제, 회의 참석 등을 통해 생활비를 버는 프리랜서 노동자인 나는 대부분 일정이 취소되면서 통장에 남은 돈 이외에 추가 수입을 한동안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또 내가 관계된 학회와 시민단체, 공공기관 등은 열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취소하기를 여러 달째 반복하고 있다. 언제쯤 아이를 학교에 안심하고 보낼 수 있을지, 바이러스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데서 생겨나는 혼란을 모두가 겪고 있다.

정부나 대학 등 책임이 있는 주체들은 지금껏 현재를 예외 상태로 규정했다. 국민이 힘을 합쳐 이 시기를 잘 버티고 극복해 내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방식 위주로 소통하고 정책 대응을 해왔다. 이는 한동안 희망적인 방향으로 작동했다. 한국은 행인 거의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할 정도의 시민의식과 국가의 방역능력이 뒷받침된 물리적 거리두기 실천을 통해 상대적으로 코로나19 유행에 잘 대응해왔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최근 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국내 확진자 수 증가 폭의 감소 추세도 함께 둔화했다. 고온다습한 국가에서도 지역사회 감염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름까지도 계속될 수 있으며, 일시적으로 일국 내에서 종식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언제든지 재유행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코로나19의 발생과 파급력을 예측하지 못했듯, 언제 또다시 다른 감염병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게 될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예외 상태가 끝나면, 즉 바이러스 유행이 잦아들면 정상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위에서 우리는 매일 오전 10시 새롭게 발표되는 추가 확진자 숫자에 일희일비한다. 그러나 한동안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은 우리를 체념 내지는 절망으로 이끈다. 이러한 감정을 뒤집기 위해서는, 현재가 탈출해야 할 비정상이고 미래에만 새로운 희망이 있다고 믿는 시간성의 감각부터 역전시켜야 한다. 오히려 코로나19 사태가 정상이고 우리는 이러한 현재에서 희망을 찾고 세계를 설계해야 한다.

현재를 겨냥하는 정부의 정책 제시와 대국민 소통은 더욱 필요하다. 미래를 기다리며 현재를 버티라는, 외출과 모임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끼고 손을 씻으라는 메시지는 기능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이제는 감염병의 위협이 변수가 아닌 상수로 존재하는 사회공간을 가정하고, 그러한 환경에서 사람들 간의 친교는, 종교 활동은, 공공시설 이용은, 문화·예술·체육 활동은, 교육 제공은, 경제 활동은 어떤 방법으로 가능한지를 연구하고 제시해야 한다. 급한 대로 온라인이 온갖 영역에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집 안에 틀어박혀 모니터만 응시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표준이 될 수는 없다.

예외 상태 극복이라는 패러다임이 불충분한 더욱 중요한 이유는 예외 상태라는 규정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주어지는 권리 침해나 불이익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를 예외 상태로 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 노동자, 자영업자에게 더욱 불리하게 될 것이다. 대학 시설은 대부분 이용이 제한되고 있는데 평소의 등록금 전액을 이미 납부받은 대학은 학생들에게만 예외 상태를 감내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꼴이다. 모든 것이 다 미뤄져도 절대 연기될 수 없다는 국회의원 선거는 4월15일 치러진다. 자가격리 대상자와 47% 재외국민 등의 참정권을 침해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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