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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전염병과 정보에 대한 갈증 / 전상진

등록 2020-04-19 17:30수정 2020-04-20 09:34

전상진 ㅣ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전염병이 유행하면 정보에 대한 갈증이 커진다. 질병의 원인이나 유래, 그것이 전염되는 경로와 방식, 마지막으로 그 질병에 대한 치료법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병들어 죽어가는데 그 원인을 모른다면, 어디서 비롯했는지 알 수 없다면, 어떻게 확산되는지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불안과 공포를 다스리는 정보는 두가지다. ‘믿을 만한’ 정보와 ‘편리한’ 정보다. 앞의 정보는 지배적인 권위의 속성에 따른다. 이것 역시 두가지로 구분된다. 명령에 가까운 권위와 동의에 근접한 권위다. 종교의 시대에 신의 계시는 명령이었다. 그에 따르지 않으면 병에 걸리지 않더라도 신의 권력을 집행하는 제도와 집단에 의해 시달렸다. 왕이 지배하던 시대 역시 그와 흡사하다. 그러니까 신과 왕의 시대에는 이중의 위협이 존재했다. 병으로 고통을 받거나 명령에 따르지 않아서 시달리거나.

과학의 시대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과학은 신이나 왕의 자의적 명령보다 객관적인 ‘원리’에 의거해서 사람들의 동의를 얻거나 독촉한다. 실제로 전염병과 관련해서 과학은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추수’한다. 옳기 때문이라기보다 좋은 결과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과학이 미처 준비하지 못했는데 전염병이 유행하면 문제가 생긴다. 과학이 제공하는 지식은 관찰, 실험, 토론이라는 방법에 의해서 뒷받침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전염병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에 과학 내부의 이견이 커진다. 입증보다 주장의 영역이 커진다는 말이다.

‘편리한’ 정보가 활약할 시간이다. ‘빠르고 단순’하고, ‘익숙’하며, ‘명확’한 게 편리하다. 불안해 이미 미칠 지경이라서 늦고 복잡하며, 생경하고, 불명확한 권고보다 빠르고 단순한 지침이, 익숙한 생각(선입견이나 편견)이, 좋고 나쁨을 명확하게 가르는 기준이 더 좋아 보인다.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믿었던’ 과학이 갈팡질팡한다면, 편리한 정보를 취할 자유 영역이 넓어진다. 어떤 편리한 정보가 전염병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덜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가. 가령 마스크와 관련해서 전세계 방역 전문가의 의견이 동일하지 않다. 마스크를 구하기도 힘들고, 착용도 귀찮고 낯설며, 위대한 미스터 트럼프도 ‘마스크를 권하지만 자신은 쓰지 않겠다’고 하지 않는가. 확실하게 믿을 게 없다면 내게 편한 걸 선택하면 된다.

인포데믹은 믿을 만한 정보가 귀하고 편리한 정보가 난무하는 상황을 표현하는 용어다. 인포데믹이 최근 심각하다지만, 그것은 사실 ‘언제나 반복하는 현상’일 뿐이다. 에이즈와 사스, 그리고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통제하기 힘든 전염병은 믿을 만한 정보를 무력하게 만들어 편리한 정보에 대한 갈증을 키운다. 갈증을 달래주는 편리한 정보의 두가지 패턴이 있다.

첫째, 원인과 전염 경로에 대한 정보, 이를테면 인종청소, 생물 무기, 몰래 전염을 확산시키려는 엘리트의 음모 따위의 정보다. 미국엔 중국이, 중국엔 미국이 생물 무기의 발사국이 된다. 이동통신 네트워크(5G)를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된다고도 한다. 그러한 정보의 편리함은 두가지다. 먼저 실패한 방역 책임을 모면하게 해준다. 그리고 보이지 않아서 더 무서운 적(바이러스)을 사람이나 국가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아시아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공격받고, 중국에선 아프리카 사람이 배척당하는 건 편리한 정보의 ‘부수적 피해’일 것이다.

둘째, 치료와 관련한 정보다. 거대 제약회사와 의사가 결탁해서 치료법을 은폐한다는 의혹도 있고, ‘오만한’ 합리적 과학에 의해 억압되고 잊힌 ‘대안적 치료법’에 대한 정보도 유행한다. 예컨대 소금물이 ‘용한’ 치료제라 한다. 전염병만으로도 이미 위험한데 그런 정보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한 종교인의 가족이 신자에게 소금물을 ‘처방’해서 오히려 감염이 확산된 사례가 있다.

방역의 모범 국가인 한국에선 편리한 정보에 대한 갈증이 크지 않은데도 그것을 이용하려다 헛발질을 한 사례가 있다. 4월13일에 한 신문이 ‘총선이 다가오자 코로나 검사가 마술처럼 급감’했다는 의혹을 보도하자, 다음날 야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이 맞장구쳤다. 4월15일 그 당이 처참한 성적을 거둔 이유를 짐작게 한다. 공교롭게도 하필 그때 ‘마술처럼’ 등장한 기사에 답이 있다. “코로나 방역은 과학이지 정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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