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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에서] 코로나 이후도 지역주의에 갇힌 대구 / 박주희

등록 2020-04-20 17:44수정 2020-04-21 09:36

박주희 ㅣ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코로나19를 겪으며 대구는 많은 빚을 졌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와준 전국의 의료진과 구급대원들,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큰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 방역용품이 부족하다는 호소에 전국 곳곳에서 마스크와 의약품을 끌어모아 주었다. 넘쳐나는 환자들을 다른 지역의 병원과 생활치료시설에서 기꺼이 맞아들여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의료진이나 구급대원뿐만 아니라 대구에 보내준 전국의 격려와 연대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감동이었다. 기관이나 단체는 물론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응원이 불안과 두려움으로 움츠러들던 시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 공공기관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힘내자, 대구·경북! 힘내자, 대한민국!”이라는 깨알 응원조차 뭉클하게 다가왔다.

다행히 지금은 코로나19가 안정세를 유지하는 중이다. 집단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까 노심초사하던 때는 지났지만 여전히 조심스럽게 일상을 이어간다. 대구를 향한 충분한 지원과 헌신에 힘입어 이만큼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전투를 치르듯 감염병과 싸우다 보니 시행착오와 미숙한 일 처리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대표적인 것이 파견 의료진의 수당 미지급 논란이다. 몇주간 대구에서 봉사를 한 의료진 상당수가 수당을 제때 받지 못했다. 임무를 마친 뒤 자가격리 기간에는 수당은커녕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알려져 많은 이들을 화나게 했다.

이달 초, 대구로 파견됐던 전국 119구급대원 해단식에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가 참석하지 않은 것을 두고도 말이 나왔다. 구급대원 294명, 구급차 147대가 41일 동안 1만명이 넘는 확진환자와 의심환자를 이송했다. 장기간 감염 위험에 노출됐던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서도 가족과 떨어져 격리생활을 했다. 시민의 대표가 좀 더 예의를 갖춰 배웅했어야 옳았다. 의료진 수당 미지급이 정부나 대구시 어느 쪽의 탓인지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미안하다. 혹시 구급대원들이 떠나면서 서운한 마음이 들진 않았을지 내내 마음에 걸린다. 묵묵하게 감염병 현장을 지킨 이들은 허물을 들춰내기보다 불편을 감당하며 너그럽게 넘겼다. 그래서 더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대구·경북을 향한 시선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결국 또 지역주의냐’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지역 일부 언론과 정치인은 ‘지역주의가 아니라 국정 실패에 대한 심판’이라고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제 대구로는 여행도 안 간다’는 감정적인 반응도 쏟아진다. 날 선 말들에 불편하기도 하지만 역시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기대를 실망으로 돌려준 데 대한 미안함이다.

코로나19의 한가운데에서 대구에 보내준 끈끈한 연대 속에는 기대가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막연하게나마 지역주의의 빗장을 여는 변화를 기대했을지 모른다. 가장 어려울 때 손 내밀어준 이웃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오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대구는 다시 한번 지역주의에 갇혔다. 정치적 선택에는 복잡한 이유가 있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지역주의를 빼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케케묵은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세력이 있으니 오롯이 지역 탓만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합리적 비판은 감내해야 한다.

선거 결과를 놓고 오가는 말들 가운데 ‘결국엔 지역주의다, 힘들 때 도와도 소용없다’는 얘기가 가장 아프다. 대구가 코로나19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모두가 함께해준 연대를 부질없는 일로 몰아세우기 때문이다.

감염병과 같은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외상과 싸우면서 부정적인 심리적 증상으로 힘겨워하지만 동시에 이전보다 높은 수준의 성장을 경험하기도 한다. 외상 극복 과정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지지자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 삶을 변화시킨다. 대구도 그렇게 외상 후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 싸워준 이웃들의 착한 영향력은 대구 곳곳에 긍정적으로 스며들었다. 그 밑거름이 대구를 조용히 성장시킬 것이다. 선거 결과가 어떻든 대구를 향한 이웃들의 위로와 격려, 연대의 힘은 전혀 빛바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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