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홍 ㅣ 녹색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4월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이날 세계는 산업재해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다짐한다. 모범적인 코로나19 대응 사례라며 우리나라가 세계 각국의 찬사를 받고 있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산업재해 통계에는 여전히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지난 23년 동안 21번 1위를 기록했다. 비슷한 경제 규모를 가진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5배 높은 수치다. 올해 4월 중순을 넘은 시점에 벌써 177명이 산재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특징은 낙후된 형태의 사고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높은 곳에서 추락한다든지, 구조물에 끼이거나 깔린다든지, 수은이나 메탄올과 같은 독성이 잘 알려진 유독물질에 중독되는 것과 같은 사고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는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널리 알려져서 이미 외국에서는 거의 사라져버린 사고를 우리 국민들은 일터에서 무방비로 겪고 있다는 의미이다. 사업체가 안전조치를 해서 이러한 사고들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는 이유는 물론 비용 절감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잔혹한 비용 절감을 우리 사회가 사실상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업체가 안전설비를 갖추지 않아도 적발되는 일이 드물고, 적발되더라도 가벼운 벌금으로 넘어갈 수 있으며, 사고를 버젓이 은폐하고, 아예 위험작업 자체를 외주화하는 방식으로 간단히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업주들은 규제를 우습게 여기고, 위험한 일터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텨나가는 노동자들은 부당함을 체념하는 법부터 터득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가장 흔한 산재사망 원인은 추락이다. 한 해에만 500명 정도가 추락 사망한다. 추락으로 부상당한 사람들의 숫자는 훨씬 더 많아 진료를 하다 보면 4층, 5층 높이에서 떨어져 살아남은 분들도 드물지 않게 만나게 된다. 사람이 막지 않은 사고를 겪고도 하늘이 도와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신체적 장애나 뇌손상 등의 후유증상이 남으면 대부분 일터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거나 혹은 가족들의 24시간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고를 겪은 환자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을 찾지만 뒤이어 가족들도 진료실을 방문해 눈물을 쏟는다. 경제적 곤란에다가 돌봄의 문제 등이 얽혀 가족 구성원들의 인생도 변곡점을 그리며 함께 추락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보다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먼저 사고를 겪고, 제대로 된 안전장치만 있었으면 지켜졌을 가정이 속절없이 무너진다.
정부는 산재사망 절반 감축을 천명한 바 있다. 그 일환으로 노동부가 현장 감독 대상을 확대하고, 사고 위험이 큰 재래식 추락방지 장치 대신 안전성이 검증된 일체형 작업발판이 사용되도록 지원하는 등의 조치를 시행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정부의 대책과 접근 방식으로는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제물로 바쳐 비용을 절감하는 기업들의 행태가 근본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전히 여러 산업부문에서 위험을 외주화하는 방식이 통하고 있다.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체는 큰 손실을 보도록 하는 규제 법안과 이를 감독하는 충분한 인력 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끝없이 억울한 죽음들을 추모해야 할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국민들은 개개인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생명을 지키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이 시대의 요구이다. 지난 총선에서 더 많은 책임을 갖게 된 집권여당과 정부는 이러한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